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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쪽

경전을 읽되 자기 마음 속으로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읽었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97쪽

선의 의미

선은 순수한 집중울 통해 인간 존재의 실상을 자각하는 길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들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길이다. 이러한 선이야 말로 일ㅉ기이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특색이 아닐 수 없다. 

 

선이란 산스크리트 드야나의 음을 중국에서 선나(禪那)로, 그것을 줄여 선으로 쓰게 된 것인데, 그 의미는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으로 닦음(思惟修)이다. 생각을 가라앉혀 정신을 집중시킨다 해서 정이라 번역하고, 음과 뜻을 합해 선정이라고도 한다. 

 

생각을 가라앉혀 정신을 통일하는 것은 불교의 어느 특정한 종파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인도의 불교에서 선정은 불교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요소이고, 이 선정에 의해 지혜가 열린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선정과 지혜는 서로 떠날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룬다. 지혜는 선정에 의해 빛을 발하고, 선정은 지혜를 바탕으로 더욱더 심화되어 간다. 선정이 없는 지혜는 메마른 분별지로 퇴색하고, 지혜가 따르지 않는 선정은 공허하고 맹목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선정은 기름에, 지혜는 등불에 비유되고 있다.

 

198쪽

중국옷을 입은 선 - 선종의 형성과정

보편적인 선이 종파적인 선으로 변질된 것은 물론 중국에 이르러서였다. 선종이 탄생된 것은 당나라 말기에 와서인데, 이때의 선은 이미 '드야나'의 역어로서가 아니라 중국적인 사상이 진하게 밴 나머지 새로운 중국말의 뜻을 지닌 선으로 탈 바꾼다. 오늘날 우리들이 선이라 하면 곧 좌선을 연상하게 되는 것도 이런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다. 좌선은 선에 참하는 즉 사유수의 여러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지 선의 동의어가 아니다. 

 

*편력자: 고향따라 여행하는 사람

그리고 선종이 옛날 집권적 통일국가의 붕괴과정에서 출현했다는 점은 선종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매듭이 될것이다. 정치적인 혼란기에 이루어진 선종은 왕조로부터 재정적 지원이나 장원의 혜택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안정된 생활기반을 가질 수 없던 그들은 자연 편력자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선종은 삼조 승찬시대(~606)까지도 특정한 사원을 갖지 못했다. 선승은 주로 율원에 붙어 살면서 편력자로서 탁발에 의해 생활을 꾸려 나갔었다. 

 

이와 같은 편력자들은 일반 민중과 접촉이 활발하게 된다. 외래종교가 대중화된다는 것은 곧 민족적으로 이해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선은 점차 민족적 사유와 밀착하게 된다. 후기에 이르러 불교의 다른 종파는 중국에서 그 존재가 희미해지고 말지만 이 선종만은 민족의 종교로서 일반화되어 사회 각층에 스며든다.

 

왕실이나 부호로부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필요하지 않는 단신인 수행자들은 번거롭고 따분한 교학의 연구에 손댈 생각이나 여유가 없다. 종교 그 자체의 도그마에서조차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산의 혜원이나 삼종론의 길장이 방대한 저술을 남겼던 같은 시대에 선종에서는 이렇다 할만한 저술이 없다. 단지 시나 짤막한 글을 남겼을 뿐이다. 따라서 과거의 교학체계로부터 단절이 된다. 이를 '불립문자'라 했다. 뒤에와서는 선종처럼 전적이 많은 종파도 없는데도 그 체계만은 한결같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직관에 의해 파악하려고 했다. 그래서 좌선이 강조된다. 즉 진리는 문자 밖에 있는 것이므로 직접 자신의 본성인 마음을 꿰뚤어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直指人心 見性成佛 )

 

이와 같은 뜻을 지닌 수행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마을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운수행각의 편력자적 생활에서 집단적으로 정착하게된 것은 사조 도신의 때에 시작되고 있다. 그들은 그전처럼 걸식행각을 할 수 없게 되자 자급자족의 생활을 찾게 된다. 그들은 몸소 밭을 갈고 나무를 베어 집을 세웠다. 여기에서 선승들은 생산에 종사하고 노동을 신성시하기에 이른다. 농동시간에 범답을 주고받는다. 노동과 참선을 동일시 했다. 

 

이러한 공동생활이 이루어지자 교단의 새로운 생활규범이 필요했다. 이 생활규범을 청규라 불렀다. 이것은 백장 회해가 처음으로 조직, 여기에 교단으로서의 선종이 형성된 것이다.

 

선의 개념이나 그 사상이 아무리 중국적인 것으로 변용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근원은 역지 교조불타의 가르침인 선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좌선삼매경, 달마다라선경등 이른바 소승불교의 여러 선경을 비롯하여, 반주산매경, 반아경, 화엄경, 능가경, 유마경 등 수많은 대승경전에서도 한결같이 선정을 강조했던 것이다.

 

201쪽

이 책의 내용

서산대사 휴정 스님의 저술이다. -- 50여권의 경론과 조사 어룩을 보다가 요긴한 것을 추려 모아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처음에는 원문만 써 놓았는데 난해하다는 제자들의 뜻을 받아들여 다시 원문마다 주해를 달고 송이나 평석을 붙여 놓았다. 

 

선가귀감을 통해 400년 전 선교가 대립되어 있던 우리나라 불교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과 아난이다. 말 없으로써 말 없는데에 이르는 것을 선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 법은 비록 한맛이지만 뜻은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