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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과 프롤로그

 

6쪽

불교는 인도문화권에서 시작되어 문화권을 넘어 중국 문화권에서도 대유행한 특이한 종교이다. ---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이 무력에 의지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문화권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불교의 유연성은 실로 경이롭기 까지 하다.

 

8쪽

오늘날 학교 교육은 서구식의 분석적인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이는 전체를 보는 거시적인 통찰을 거세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오히려 나는 이보다 청나나릐 백과사전식 학파(박학파)를 선호한다. 박학파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하며, 이의 영향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을 통해서 확인된다.  오늘날의 학문적인 흐름은 융복합이라는 신박학파를 요구하고 있다. 

 

9쪽

수묵화가 붓으로  먹을 찍어서 일필휘지로 작가의 정신경계를 펼쳐 내는 것이라면 유화는 끊임없는 덧칠을 통한 인고의 구조적인 완성을 꾀한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인 차이를 잘 보여준다. 동양의 전체적인 통찰과 흐름을 위주로 한다면 서양은 분석과 조합을 통한 완결성을 중시한다.  동양은 관계속에 있다고 인식했다. 서양의 분석은 의미 파악은 분명하지만 관계가 결핍되어 있다는 점에서 생명이 없다.

 

10쪽 

불교의 성립괴 쇠퇴를 일이관지하는 것은 상업자본이라고 본다. 상업에는 이윤추구의 합리성과 이성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불교정신이 상업과 무관하지 않는 것이고, 농경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가치를 내포한다. 상업의 수요와 공급을 통한 적절성에 의해서 가치라 결정된다. 시장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관계속에서의 가치일 뿐이다. 불교의 진리관인 변화의 연기법과 그 속에서 의미가 되는 중도설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13쪽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나를 세우는 종교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주관적인 의지를 강조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앎이 동반되어야 한다. 앎이 수반되지 않으면 나라는 주관을 확립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다. 

 

1. 불교 출현의 배경

26쪽

불교는 소멸의 수용을 통해서 소멸을 넘어서는 경계를 말하고 있다. 소멸의 완전한 수용은 다른 것이다. 단멸론과 영속선으로 부터 벗어나 있다. 상업의 발달은 신들의 공간을 이상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신에 대한 의심을 만들었다. 또한 전쟁국가와 신의 관계는 신의 순위를 만들게 되었다. 이후농경으로 인한 부의 창출과 소득, 쟁취, 권위등은 전쟁을 낳았고,  전쟁은 신보다는 전략, 이성을 앞세우게 되었고, 결국 사회적인 혼란과 신분계급의 동요를 낳았다. 이후 전지구적으로 축의 시대라는 이성의 시대가 촉발하게 된다. 이러한 변하는 철기의 시작과 상업이다. 

 

33쪽

절대신은 찬양과 믿음의 대상일 뿐,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신에 대한 이해를 한다면 자기 보존과 강자에 대한 요구 속에서 신이 설정되었다고 본다. 초기 총교의 신들은 모두 인간보다 강함 힘을 가진 동물이나 강력한 동물의 특정부위를 인간과 결합된 존재로 등장된다. 이것은 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신의 분노와 두려움의 모습에서 자비와 사랑의 이미지로 변모한다. 기독교 성서가 구약, 신약이 그러한 역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신의 변화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좀 더 성숙한 인간의식이 보편적인 신을 바라게 된것이다.  또한 축의 식대에 발생한 동양의 불교, 유교, 도가는 진리 중심으로 구성된다. 법인도가 그것이다. 이 가치들은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35쪽

개별적인 신에서 보편성의 변모는 범신론을 만들기도 한다. 범신적이게 되면 개별성이 사라지게 된다. 개별성이 보편화 되었다는 것은 존재 이유를 사라지게 한다. 이것이 범신과 무신이 통하는 이유가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빛과 공기이지만 인간은 희소성을 추구한다. 그것이 특수와 보편, 보편의 특수의 문제가 된다. 

농경사회는 많은 신이 있지만 신을 인간이 선택하고 배척할 수 있다. 이것은 신과의 종속구조를 만들지 않는다. 즉 신은 인간보다 우월하지만 동시에 선택적인 조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목은 문화가 단순하다. 간단명료함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유목은 종교에 대해 강한 배타성고 보수성을 갖는다. 유일신에 대한 단순 반복적인 믿음은 신에게 종속되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 

 

39쪽

상업은 정확한 상황 판단(형세 판단)에 있다. 변화에 따른 발 빠른 대처와 미래 예측이 있어야 한다. 즉 상업은 정보와 판단이라는 두축을 가진다. 거기에 모험과 지적호기심이 동반된다. 그것이 상업만의 유연성을 내포하는 과감성이다. 상업에는 신은 없고 합리성만 있다. 그들의 윤리 기준은 이윤 추구가 준거가 된다. 상업에 윤리가 빠지더라도 상업은 그자체로 아름답고 계속된 변화가 있다 그 이유는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상업은 윤리보다는 행복과 어울린다. 불교는 세계종교중 유일하게 상업을 기반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특유의 합리성과 유연성이 있다. 따라서 불교의 핵심은 상업과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

 

42쪽

농경민과 유목민의 질서를 허무는 것이 상업이다. 그들의 안정성과는 다른 폭의 변동이 내포되어 있다. 상업을 통한 신규자본의 창출과 평민 자산가의 등장은 전통적인 질서를 교란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가치관을 요구받게 된다. 자본과 권력은 도시를 유지 발전하는 2대 축이 된다. 하지만 자산가과 권련가 위에 사제 집단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새로운 종교로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게 된다. 다시말해 전통적인 신 중심종교와 변화를 제시하는 이들이 사문으로 불렸다. 

 

45쪽

더운 지역의 사람은 느림의 미학이 있다. 의복과 주거가 없어도 된다는 점은 노동의 목적 자체를 흐려지게 한다. 인도는 느린 움직임으로 뇌가 상대적으로 많은 산소를 소모하게 된다. 생각은 뇌에 열을 가하게 된다. 필요이상으로 열이 많아지만 뇌세포는 죽는다. 그래서 인도에는 관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의식은 존재하지만 생각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가 관이다. 더운나라에서는 이성에 대한 욕구, 술의 탐욕, 사냥이 적고 정적이다. 더위는 사유와 언어를 발달하게 한다. 그래서 논리학이 발달하게 된다. 

 

52쪽

기독교의 입김은 신의 일부는 아니다. 아트만은 신의 일부이다. 절대와 완전의 일부는 언제나 절대와 완전이 된다. 그렇기에 무한의 한 부분은 같은 무한이라는 점을 통해 대등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것이 범아일여 사상이다.  신이 절대성이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다는 자각과 범아일여사상은 신으로부터 인간이 독립도 가능하다는 논리로 전개된다. 여기에 상업의 이성주의 관점이 강화되어 신이 아닌 진리가 부상하게 된다. 그것이 초인시대이다. 신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하여 요 소설이 등장하게 된다. 붓다는 요소적 결합을 인과 연기 법칙으로 해석한다. 요소의 결합에 이한 가화합성은 아트만과 같은 항상성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불교가 무아설인 이유이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중요한것은 현재이고 적절성 바로 중도가 된다.  이것이 붓다가 말하고자 하는 신 중심의 사고를 전환하는 진리 중심의 합리적 대안이다. 그래서 불교는 인간적 해법이 들어 있다.

 

2. 붓다의 생애와 사상

 

58쪽

문명의 충돌은 가치관의 혼란을 파생하고, 인간은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마침내 적응하며,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 내게 마련이다. 또한 육사외도 시절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도 사도에 있었기에 신분제가 약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결국 능력주의가 우세되고, 그런 지역에는 개방적이며 토론장으로 거듭할 배경을 가진다.

 

73쪽

붓다는 상대에게 믿음 대신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상대의 사고 방식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배경과 합리성이라는 두가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굳이 석가가 아니라도 되는 이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후 다양한 붓다들을 가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74쪽 

고행은 이원론적 문화배경을 가진다. 고행이 반복되면 고통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붓다가 고행을 버리고 명상주의로 전향하게 된 것이다. 명상 주의는 평온함을 가져다 부지만 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명상상태에서는 행복하지만 깨어나면 현실적인 문제와 다시금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명상이 제한적인 행복이라는 이유이다. 따라서 붓다가 주장하는 중도는 명상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현실화한 세상의 변화시키는 원리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78쪽 

붓다의 중도는 대상을 무력화시키거나 인식 주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집착을 여의는 것이다. 말을 잘될 떄는 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혀에 대한 생각을 여의는 것 처럼 말이다. --- 상황에 따른 적절성은 중과의 일체성을 확보하게 되고 그것이 적중이다. 이러한 가치의 유지는 득중, 중의 체득으로 완성된다. --- 파도타기는 파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지지 않고 파도를 타면서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중도란 이 세상의 변화를 관조하면서 번뇌라는 파도와 충돌하지 않고 이를 타는 것이다. 

 

80쪽 

전체적인 변화의 철학을 붓다는 연기(관계)라고 했고, 정확한 판단 적절성은 중도가 된다. 기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불교적인 시작의 진리관이고, 중도는 내가 존재하는 현실적인 입각점이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이성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을 객관화 하여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이 요구된다. 관계성이라는 연기의 변화 법칙에 의해 세상은 돌아가고, 유효한 적절함을 얻는 것이 개개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붓다가 연기라는 변화 원리를 신을 대체하는 보편의 원리로 상정하게 되고 변화하는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이를 온처계라는 사문들의 요소를 수용해서 해결하게 된다. 오온(색수상행식), 십이처(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18계(12처 + 6식)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을 철학에서는 코페이누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사실(존재)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변화한 것이다. 

 

정신적인 인간은 생각과 번뇌가 실제로 뇌의 전기 자극에 의한 것으로 전쳐 가지가 없는 허상이라는 점이고, 물질적 인간은 분해되면 결국 고통받는 나라는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어 나라는 집착을 벗어나게 되며, 정신과 물질의 조합은 이 양자를 적절히 혼합하여 설명해준다. 

 

관계성으로는 전체를 보는 방식을 갖게 하고, 분절이라는 분석은 공성으로 이해한다고 표현한다. 즉 세계에 고정된 실체가없다는 관계적인 관점이 연기이고, 이의 분석적인 관점을 통해 관계마저도 풀어버리는 것이 공이다.  처음에는 신이 없다는 연기라는 관계성이라는 대안적 현실인식이 강조되다가 후에는 관계성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공이 점차 무게를 갖게 된다. 

 

87쪽

과학은 법칙의 제시를 통한 문명의 발달 추구라면 불교는 진리의 체득을 통한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다. 과학은 보편 법칙의 객관화라면 주관적인 체득은 불교이다. ---- 붓다는 법칙의 발견자인 동시에 체득자이다. --- 관계성 중심으로 보면 연기론이 되고 본체론 중심으로 보면 공의 철학이 된다.---- 진리에 대한 정확항 인식 확립이 수다원이다. 일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면 번뇌가 붙은 곳이 없어져 아라한이 된다. ---  무상과 무아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집착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거듭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변화에 대해 바르게 알면 열반의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90쪽 

불교에서의 고는 생멸속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서의 일체가 고이다. 즉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세계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고인것이다.  이원론적 세계관과 일원론적 세계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이원론적 관점에서는 불교는 꿈과 같은 세계에서 깨어나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꿈속에서도 즐거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므로 헛된 고라고 한다. 그리하여 꿈은 어떠한 경우라도 고이며 낙일 수 없다는 것이 불교적 관점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일원론으로 세계에는 고와 낙이 공존한다. 상대적인 고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현실 부정이 아닌 현실 긍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인도는 세계가 깨어나가야 할 부정의 대상이라면 중국은 관점만 전환하면 되는 삶의 세계였다. 

 

92쪽 

윤회론은 죽음이라는 인간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에서 시작되었다. 윤회가 변화의 순환을 통한 영생이라면 해탈은 존재의 항상성을 통해 영생의 가치를 말한다. 붓다는 새로운 개념 열반을 제시한다. 열반은 영속의 논리가 아닌 해체의 체계이다. 열반은 마치 불을 끈것과 같아서 어디로 가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통해 분명해진다.  하지만 개념이 뚜렷하지 않아 혼재 되어 사용되곤 한다. ---- 이후 새로운 윤회론이 등장하게 된다 능력제로의 관점 전환된 윤회론이다. 후천성의 자각이 대두되었다. 후천적 삶이 강조되면 노력에 의한 판단과 재규정이 부각될 수 밖에 없다. 붓다의 윤회론은 신으로 부터 인간을 독립시는 역할을 한 것이다. 붓다의 윤회론은 부정연속성을 말한다. 인과를 너무 강조하면 의지적인 노력에 제약이 되기 때문에 부정연속성을 말한다. 신분이 상승되는 로또식이지만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험에 합격(수다원)해야지 일곱번의 윤회 끝에 깨닫는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이는 내일해야지 하는 만년패같은 늘어진 구조가 아니라 불안을 주어 대안적인 수행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붓다 당대에 성공하는 축이된다. 

 

고정적인 윤회론에서 변동 가능한 윤회론이 되면 인간은 불안해진다. 상승은 곧 하락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승의 불퇴전과 같은 개념을 파생하게 된다. 전진만 있고 후퇴는 없다는 것이다. --- 그 불안은 결국 진학형 윤회론을 만들게 된다 윤회를 통한 내생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만드는 오늘도 중도하다고 붓다는 가르치고 있다.

 

107쪽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보다 장기화 될 것 같으면 사건을 덮어서 종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 초부지라고 한다. 인도에는 땅이 질거나 하면 풀을 깔아서 덮는 문화에서 유래되었다. 감정대립으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때 사용된다. --- 붓다는 종교인이라기 보다는 수행자였다. 붓다의 제도관은 인간을 목적에 두고 제도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가치와 결부되는 통과의례와 같은 제도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13쪽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의 등은 언덕 섬을 의미한다. 인도에는 3개월의 우기가 있는데, 비피해가 없는 고지대로 피난을 가서 의탁한다. 고지대는 언덕이 된다. 언덕섬은 생명의 의지처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섬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등불이라는 해석을 하게 된다. 자등명이 먼저 나오고 법등명이 나온다. 개인의 가치를 손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불교는 정해진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바른 것을 찾는 것이다. 

 

3. 인도불교의 전개

 

147쪽

공임에도 불구하고 꿈을 꿀 때의 꿈꾸는 자에게 영향을 발휘하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성립된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개념의 인식론적 유식 철학이다. 꿈에는 실체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공의 철학이지만 꿈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유식 철학이 된다. 

 

148쪽

대승의 초월적인 석가모니의 등장은 사실과 역사의 간극에서 등장하게 되면서 집적되어 완성되는 대표적인 경전이 법화경이다. 

 

158쪽

각 국가들은 전차의 수레바퀴의 너비를 다르게 했다. 이것은 자축이 다른 수레는 걸림돌이 된다. 이로써 이웃나라의 침략을 막는 방어가 된지만 상인들은 각 나라의 경계를 넘을 떄마다 관세와 더불어 수레를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통일을 지지하게 된다.

 

168쪽

아소카왕의 불적 순례가 불탑의 보편성에 대한 성지순례의 특수성과 관련되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동반교단은 불탑의 소유라는 특별함은 잃었지만 성지 순례라는 부분을 확보하게 되고, 이는 아소카왕의 불적순롈르 통해 거대한 당위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동방과 서방교단은 서로 장군 멍군을 했고, 아소카왕은 각각 교단에 이익을 주면서 불교 발전과 제곡의 안정을 동시에 도모했다. 

 

174쪽

붓다를 관상해서 붓다의 실존을 체득하는 반주삼매(관불삼매)

남인도는 무형상주의에 입각한 공사상 탄생, 부정의 방법을 택하게 됨.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해 인정하지 않는 부정의 방법을 택함. 판 자체를 뒤엎는 파격적인 방식. 공이 곧 붓다이다.---- 형상측면에서는 불상이 있고 무형상적인 관점에는 공사상이 위치한다. 형상주의의 최후에는 밀교가 있고 무형상주의에서는 선종이 존재하다.  오늘날의 불교는 형상과 무형상의 이 중구조로 되어 있다. 

 

182쪽

대승은 다양성의 상황에 기인한다. 소승은 교리를 더 어렵게 만들고, 대승불교를 붓다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은 대승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재정립하게 한다. 대승의 이상은 아라한을 넘어서 붓다가 되는것이다. 붓다는 석가외에도 과거와 미래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진리의 발견자이기에 동시간대 공간에서 여러 붓다들이 존재할 개연성을 만들게 된다. 부파 불교와 경쟁해서 이기기 힘든 석가 대신 다른 붓다로 교체하게 된다. 이는 광범위한 지역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속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다양한 배경관점들이 불교에 수용되고, 다양성 철학적으로 받아 들에게 된다.  즉 대승블교는 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딸느 불교 내부의 산발적이고 북합적인 신앙운동이다. 

 

187쪽

붓다에 대한 범신론적 신앙 인식이 발생하는데 그 정점이 법화경이다. --- 동방교단에서는 민간에서 붓다에 대한 기억이 구전되었을 것이다. 중생을 애민하는 자비로운 붓다 상이다. 이를 배경으로 종교적인 관점의 붓다를 만든 것이 법화 사상이다. 법화사상은 석가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성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서 석가는 구원의 실체로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붓다로 재평가 된다. 즉 합리성과는 논리적 층위를 다르게 했다. 즉 종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191쪽 

법화경과 유마경은 사리불을 어리석은 존재로 만들어 희화한다. 이는 부파의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 대승은 상대적인 약자였으므로 유연함과 보편성을 보이게 된다. 문화권을 넘어 일반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게 된다. 

 

194쪽

대승은 보시와 같은 이타성과 자기희생을 이상적인 수행으로 제시한다. 이를 보살도라고 하는데 대승불교게 제시하는 붓다가 되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대승불교는 사회적인 실천과 노력을 통해 붓다를 성취하는 것이다. --- 현대의 복지적인 관점이나 사회적인 실천 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이 사회의 완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가 주된 가치가 된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 유리되지 않으면서 완성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러한 해법을 대승이 가지고 있다. 

 

198쪽

부파불교의 주지주의관점은 성리학과 유사하다. 부파불교의 어려 가치들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너무 쉽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성적인 종교일수록 더욱 더 쉽게 몰락한다는 법칙에 부파불교가 예가 되었다.  그에 비해 대승불교에는 신앙적인 종교성이 있었다. 그것이 밀교를 낳게 되고, 밀교와 함께 잔존할 수 있게 된다. 

 

201쪽

모두가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열린 관점은 우리 모두 보살이라는 자각을 일꺠우게 된다. 인간 존엄의 가치가 대승불교에 와서 신분제와 성별을 넘어서는 완성을 보인다. 출가와 재가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사회적인 완성의 가치에 대해 관점을 변화한다. 밀교는 관정의식을 통해 붓다임을 자각한다.밀교는 붓다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향해 자비 방편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선종도 존재 자체의 완성을 말한다. 밀교는 내가 붓다가 되지만 선종은 붓다가 내가 된다. 이로 인해 밀교는 이 세계가 그대로 깨달음의 경계인 만다라가 되지만 선종은 그저 일상 전체 자체가 깨달음이 된다. 마치 빗방울이 빗방울이기를 포기하면 바다가 된다. 그러나 바다가 빗방울이 되기도 한다. 전자가 밀교라면 후자는 선종이다. 밀교는 붓다의 편만을 선종은 나의 편만을 말하고 있다. 

* 편만: 두루 꽉참

 

204쪽

밀교의 세력은 힌두교에 흡수되지만 핵심적인 본류는 티벳으로 망명하게 된다. 인도 불교의 망명은 티벳불교를 급상승 시킨다. 이 일로 티벳밀교는 몽골 세계 제패시기에 강력한 세력으로 중국 문화권을 휩쓸게 된다. 그러다가 중국에  강제 복속되면서 티벳밀교는 세계속으로 흩어진다. 이것이 불교의 세계화이다. 덕분에 티벳불교는 세계 제1의 불교가 되었다. 인도에만 있었다면 사라질 수 있었을 텐데, 티벳으로 가서 세계화가 되었다. 

 

4. 중국으로 넘어간 불교

 

215쪽 

문화권을 초월하는 불교로 인하여 중국은 좀 더 보현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인도 문화가 중국문화로 흘러 가게 된다. 그를 뒷받침 하는 이야기가 자은전 권5에 나온다. 현장이 귀국하려고 당시 행장을 꾸리자 인도 승려들이 "인도에 비하면 중국은 변방의 일천한 국가인데 왜 돌아가려고 하느냐?"라고 묻는다 그러자 현장은 "중국이 인도에 비해 하열하지만 자신은 중국으로 돌아가 계몽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불교가 중구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볼 수 있다.

 

219쪽

<인도의 역사 기록>

 

인도의 관점은 공간성이 의미가 있지 시간성에는 없다. 그래서 붓다의 설법에서도 어느 때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운집한 군중과 공간적 묘사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경전을 읽다보면 상상의 한계에 부딪혀 상상을 포기하고 문자적인 이해로 치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그것이 상상이 된다는 점이 중국 문화권의 우리와 다르다. 그리하여 인도는 역사적 기록 시간적 기록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는 추후 붓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뒷받침 된다. 오늘날 붓다의 연대를 잡는 기준은 아소카왕이다. 아소카왕과 로마와의 외교 관련 문헌에서 찾는 것이다. 19세기 까지 유럽에서는 붓다를 태양의 신 정도로 여겼다. 그 이유는 일생이 너무 위대했고, 고고학적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룸비니 유적이 1895년에 밝혀지면서 붓다의 실존이 밝혀지게 되고, 그 근거는 현장이 담긴 대당서역기였다. 현장은 중국인답게 모든 유적을 정확하게 기록해놨다. 이 때문에 하나의 유적이 발견되자 나머지 유적들도 실타래처럼 세상에 나오게 된다. 중국과 인도의 문화의 차이는 역사와 반역사 역사와 초월의 관점적 차이이다. 

 

<중국의 역사 기록>

 

중국은 역사의 나라이지만 신뢰도에는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그렇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동물이다. 특정 한사람의 진술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역사는 의도적인 합목적의 도구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앞선 왕조의 문제점을 부각해서 새로운 왕조의 당위성을 천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 왜곡은 필연적이다. 불교도 중국의 역사주의를 거치면서 변형하게 된다. 먼저 중국 전통의 상고주의는 붓다의 연대를 3000년 전으로 끌어올린다. 고대이상사회를 상정하는 가치이면서 오랜 전통을 높이는 것이다. 도교는 붓다를 노자가 서쪽으로 가서 변신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를 불교는 붓다의 연대를 노자보다 끌여올려 극복해 버린다. 그 다음 중국의 족보주의 관점을 불교에 접목시킨다. 학맥, 법맥을 만드는 것이다. 천태종의 금구상승설, 선종의 전등서러, 밀교의 혈맥보가 그렇다. 중국 역사의 시간주의와 가족문화의 영향이 학통적인 학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불교의 출가 집단은 혈연이 아닌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나이 순서도 고르지 않고 구분이 어려워서 항렬에 돌림자를 쓰는 문화가 만들어 진다. 이것이 일반족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은 시간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의 순서로 정리하고 그 속에 핵심 경전을 찾고자 한다. 교판은 불교를 시간적으로 정리하고 의미에 비중을 두어 인도 불교에 대한 중국 불교의 정리인 것이다. 이러한 교판은 두 문화권이 각기 다른 잣대의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 혼란이다. 문화상대주의 영역에서는 답이 아니라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섣불리 정답을 찾는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닌 종교의 영역이며 믿음에 의한 선택이 된다.

 

<이원론과 일원론>

 

인도에서 유럽까지 아리안족의 사고는 참과 거짓 두개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참의 세계를 피안, 열반이라고 하고, 거짓세계를 차안 고통의 세계라고 한다. 인도인들은 이상이 해탈과 열반이며 그 목적의 수단이 출가인것이다. 명상을 통해 피안에 속할 수 있다. 이럴 때 신통이 생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다 신통이 필수적이다. 선정의 세계는 사후 천상의 세계와 통하게 된다. 선정이 천상세계와 통한다는 것은 불교 우주론에서 사선이 곧 색계 28천에 해당하고, 사정이 무색계 사처에 상응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종교와 세속적이 정치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이것이 제정분리의 이중구조체 계이다. 그러므로 붓다 당시 승단은 국번으로 부터 예외적인 측면을 부가 받았다. 종교법과 세속법이 양분되고 성인과 군주는 서로 다른 체계에서 다른 관점을 두고 관장했던 것이다.

 

이원론의 세계을 잇는 것 현실에서 이상을 반영하는 것을 플라톤은 수라고 생각했다. 또한 불안전한 사회를 변화하고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사회의 발전이라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불교는 세계가 고통이라는 전제의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이건 인도문화권에서는 설명이 필요없는 관점이다. 하지만 일원론의 중국 문화에서는 아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일론원에서는 세상은 긍정적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정의 대상이 되어야 출가하고 이상을 찾는다는 개념이 형성되는데 이 대전제가 수용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중국 불교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원론의 관점은 사후 세계가 없다. 유교에서도 귀신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음식을 챙겨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세관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강한 역사주의를 파생하게 된다. 이러한 중국 문화권과 역사주의는 내세관의 부재라는 상호 표리 고나계를 이루고 있다. 일원론은 제정일치를 보입게 된다. 통치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왼다. 그러니 종교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통치권자인 동시에 종교적인 수장이 된다. 긜고 중국 문화권 종교에서는 호국화같은 양상이 생기게 되는것이다. 실제로 불교 역사에서는 국가 권력에 의한 불교의 대대적인 탄압이 4차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삼무일종의 법난이라고 한다. 당나라 같은 불교 전성기에도 이루어졌다고 보아 군주권과 종교권이 수직 관계임을 보여 주게 된다. 

 

<일상의 꺠달음>

 

일원론은 신통이 없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국문화권의 수행자들은 신통은 없다. 중국은 고도의 숙련을 통한 기예에 속한 것이다. 축지법을 써도 공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장품을 써도 염력을 못쓴다는 말이다. 이 세계외에 다른 세계가 없다는 것은 꺠달음에서도 나타난다. 중국문화권의 꺠달음은 세계 밖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결국 깨달음은 일상의 재발견으로 귀착된다. 마치 등산을 하고 정상을 간다음 내려오는 것과 같다. 인식론적 관점엠서는 문제만 존재하지 삶의 문제는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이이다. 여기에서 관점 문제는 이후 돈오가 되고, 일상의 재발견은 선종의 평상심시도와 같은 일상다반사로 나타나게 된다. 중국은 자연속에 인간이라는 개념이 발달하고 자연 자체를 이상화하게 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 노자와 장자와 같은 철학 체계가 존재하게 된다. 

 

<정치의 비대와 출세의 열망>

 

일원론에서는 정치의 비중이 커진다. 그 때문에 강한 정치 지향적 문화가 연출되게 된다. 모든 가치가 정치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정치권력의 요청이 있으면 쉽게 정리로 넘어가는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정치로 인한 권력의 집중은 견제 세력의 부재때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정치 권력이 종교까지 겸하게 되면 윤리 의식에도 문제가 생긴다. 권력자는 어떠한 행위를 하여도 제재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종교도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배 이념의 불교가 성리학으로 바뀌었어도 크게 반발되지 않았던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정치 권력이 종교보다 힘이 쎄다는 증거이다.  또한 내세관이 약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 지향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 유교적인 가족주의가 결합하게 되면 학연, 지연, 혈연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일원론은 물질주의가 된다. 이원론에서는 정신이 상위 개념이 되지만 일원론에서는 정신은 육체와 결부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차별,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되고, 금전 권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는 유교의 교육열과 자본주의가 고성장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종교적인 관심이 줄어들게 되어 종교는 착한일하라는 식으로 단순한 발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종교간 차이를 알려고 하는 사람을 통이 작은 사람으로 치부하게 된다. 종교가 외연을 넓히는 수단, 사교 모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중국 문화권에서는 개개인이 다종교적인 속성을 가진다. 종교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교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간의 종교가 다양해도 종교 갈등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무종교와도 일맥상통된다. 물질적인 부분은 강하지만 윤리성이 약하다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5. 중국 불교의 변화와 발전

 

<유교의 몰락과 현학>

 

처음에는 무역인들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종교였다. 당시 불교는 이민족의 문화가 다른 특이한 풍습의 종교에 지나지 않았다.  후한 말(삼국지)가 시작되면 유교의 지배 이념의 기능이 상실하게 된다. 이 틈에 불교가 확대하게 된다. 유교의 붕괴는 문확과 예술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이후 조조의 위나라가 낙양을 수도로 하는 사마씨의 진나라로 계승하게 되는데 이러한 위진시대에 유행한 것이 현학이다. 현학(위진시대 학풍)은 오묘하고 심오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주요 텍스트와 관련해서 삼현학이라도 하는데 노자, 장자, 주역을 의미한다. 학문의 중심이 유교에서 도가적인 계통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를 신도가라고 한다. 신도가는 귀족적인 문화 정서였기 떄문에 정치와 사회질서를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당시 중국 문화가 불교에 비해서 약했다는 뜻이고 중국인들은 이후 불교에 매료되는 이유가 된다. 현학의 유행은 불교가 유행하는 과도기적인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격의 불교라고 하여 도가식의 단어를 빌려서 불교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해가 부족하면 불교에서도 도가를 유사한 측면으로 이해하곤 했다. 이러한 이해의 문제는 불교가 점차 정착되고 안정되면서 양자의 차이가 분명해지며 해소가 된다. 즉, 중국 불교가 성행하게 되는것에는 유교의 몰락과 현학이라는 과도기적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 정치는 유교, 철학은 도가적이였으나 불교가 더 철학적이여서 도가를 앞설 수 있었다

 

 

<5호 16국 시대>

 

현학의 귀족주의는 한족들에게 험한일을 꺼리게 되는 문화를 만들게 된다. 이때 유목민들이 기후변화 따른 가뭄으로 남하하게 되는데 이때 한족들은 유목민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면서 이를 해결한다. 유목민 수가 많아지자 진나라의 내분은 팔왕의 난을 가져오고 결국 유목민의 봉기로 인해 진나라는 붕괴된다. 이따 사마씨 일족이 양자강 남쪽으로 도망가 난징을 수도로 개창하게 되는 것이 바로 동진이 된다. 동진 이전을 서진이라고 하다. 서진의 붕괴는 강북에 오호인 선비, 흉노, 갈, 저 강의 5유목민족등레에 의한 16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것이 소위 5호 16국이 된다. 만리장성이라는 유목과 농경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강북은 유목민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불교는 유목 세력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들의 왕조가 개창되자 자연스럽게 불교가 지배 이념이 된다. 당시에는 지배 이념이 부재했고, 소수의 유목민이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는 구조에서 한족을 단합시킬 수 있는 한족적인 문화대신 불교를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다.  지배이념이 불교가 되자 한족이 반발이 있었지만 "이방의 신에 대한 것이므로 한족과 맞지 않는다." 이때 석호왕은 나는 이방인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불교를 더욱 진흥하게 된다. 이 기록은 당시 문화적인 충돌과 이민족 지배의 특수성을 잘 나타내 주는 점이다. 불교는 유교의 몰락과 현향의 유행 속에서 이민족의 남하로 인한 왕조 개창을 통해 강북에서 유행하게 된다

* 농경민들이 유목민들의 지배를 받게 되자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된다. 이로써 이상주의에 빠진다.

   방어기제로 전체론을 사용하게 되며, 불교의 반야사상과 불성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 청담

   - 반야사상: 덧없다. 꿈이다. 현실이 헛된것이다(잘못 받아 들임)

   - 불성사상: 나는 온전한데 환경이 좋지 않아서 이런 것이다.  

 

<강남 불교와 청담>

 

강남 문화는 손권의 오나라에서 시작되어 동진과 이후 송제양진에 이르게 되는데, 이들 왕조는 모두 현재의 난징에 수도를 둔다. 이를 6조시대라고 한다. 육조시대의 학풍은 탈속적인 청담인데, 이것의 대표가 죽림칠현이다. 지금의 힘으로는 유목민을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탈속적인 취향을 유행하게 된다. 이때 술과 한삭산이라는 마약에 취해서 현실도피하게 되는데 이것이 강남 귀족 문화의 특징이 된다. 강남은 수량이 풍부하여 경제적으로는 윤택했다. 이것은 고개지나 왕희지 도연명 등의 예술 문화가 발전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강남의 귀족주의와 현실도피 예술정신은 불교의 종교적인 관점과 통하는 면이 있다. 그 때문에 강남에도 불교의 바람이 분다. 후일 선종의 화두에서 발견되는 미학적 기풍의 정신적 기원이 바로 청담과 연관된다. 청남은 강남 불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이다. 

 

강북의 5호 16국과 강남의 육조 시대를 합쳐셔 위진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강북은 정치적이고 철학적이고 공자 시경이 주축이 된다면 강남은 개인적이고 철학적이고 노자 초사가 주축이 된다. 강북은 집단주의에 정치적이라면 강남은 개인적이며 예술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환경등에 의한 것이므로 중국의 연사를 이어서 면면히 유전된다. 강북 불교는 정부 주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정권에 예속된다면 강남 불교는 개인적인 자율성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흘러가게 된다. 

 

247쪽

<인성론>

 

인도 문화는 전통적으로 신을 믿던 상황에서 축의 시대를 거쳐 불교와 같은 인간 중심 이성주의로 변모한다. 그러나 상업주의의 몰락으로 인하여 신 중심 힌두교로 관점을 전환시키게 된다. 즉 인도는 신-인간-신의 구조를 보이게 된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은 전통적인 신중심에서 헬레니즘의 이성주의로 그리고 다시 중세의 헤브리즘으로 전홚된다. 이것이 르네상스라는 신-인간-신-인간의 구조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중국문화는 은나라때 신정정치를 통해 절실하게 하나님을 믿던 구조가 점차 약화되다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인간 중심의 이성주의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는 신을 믿지 않는다. 즉 신-인간의 단순 구조로 오늘까지 이르게 된것이다. 이러나 보니 인간의 본성에 대산 탐구가 중국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 인도나 유럽과는 달리 신이 건재한 상태에서 인간이 주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은 거의 신의 가치를 박락된다. 이 떄문에 인간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하므로 인간에 대한 논의가 깊이 있게 다뤄지게 된다.

 

은나라때에는 모든 중요한 사안은 신에게 물어서 신의 뜻을 살핀 후에 처리했다. 신에게 묻는 도구가 갑골 즉 귀갑수골이다. 그러나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 때 강태공 강상은 합리적인 이성의 관점으로 신에 의탁했떤 은나라의 마지막 제인주를 토벌하는데 성공한다. 이것은 중국 역사에 있어서 신의 아성이 무너지는 일이다(동전). 이후 춘추시대게 오면서 제후국들은 치열한 전략에 의한 승부를 펼치게 되고 이때 신의 입지는 점차 약화된다. 전쟁이라는 특성상 신을 믿거나 정의롭다고 해서 이기는 것은 안다. 송양지인의 고사로 널리 알려진 송나라 양공의 어짊은 결국 패배와 죽음이라는 대가만 지불할 뿐이다. 전국시대 신의 무가치성이 제기되면서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성 문제가 제일 큰 화두로 대두하게 된다. 중국의 인성론은 보편적으로 성선론를 취한다. 일반적으로 순자는 성악설이라는 주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질적인 성선에 입각한 제한적인 성악을 주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중국철학에서 본질적인 성악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상략: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전략

 중략: 권모술수와 임기응변

 하략: 하지말아야 할 책략

 송나라 양공: 인덕 과잉, 어리석은 베품

 

중국 철학이 성선론 일변으로 전개되는 것은 하늘이라는 오나전하고 지선인 존재가 인선에게 본성을 부여했다는 생각 떄문이다. 중국철학에서 천과 성과 관계는 인도철학의 범아일여 관점과 유사하다. 다만 인도가 범과 아중 범이라는 신 중심적인 관점을 취한다면 중궁는 천과 성 중 성 중심의 관점을 취한다. 중국 철학에서 천은 처음 기독교의 여호와와 같은 인격적 존재였으나, 점차 인격적인 요소가 탈각되면서 인격천은 원리, 이치와 같은 의리천, 천리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천리가 인간에 내포된 것이 바로 성이다. 천에 인격적적인 요소가 아닌 천리라는 법칙적 측면만 존재한다는 점은 인간 이성을 통한 원리 파악에 중국철학이 더 치중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중국철학에서의 목적은 천리와 연결된 성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또는 이를 확충시켜 천리와 합일되는 것이다. 이것은 천인합일이라고 한다. 이는 중국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유교나 도교 그리고 중국중교를 통해서 공통되게 나타난다. 물론 도교나 중국 불교에서는 합치의 대상이 유교적인 천이 아니라 도나 허 또는 불이 되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구조적인 면에서는 대동소이 하다.

 

<인성론의 발전>

 

춘추시대부터 시작된 천의 인격적인 탈각과 이러한 공백을 채우게 되는 합리적 인간 본성에 대한 자각은 논어에서 제일 먼저 확인 된다. 논어 양화 편에는 "성상근야 습상원야"라고 해서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서로 달라진다"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은 이때까지만 해도 인성론적인 가치가 점차 대두되는 정도이지, 아직은 핵심저인 위치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나타내준다.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더욱 치열한 전쟁 양상을 버리며 이와 과련해서 인간의 이성적이 능력은 더 크게 요구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신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고, 드디어 인성론이 중국철학의 주류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다. 그러나 그외에도 당시 세석, 밀자천, 칠조개, 공손니자, 고자등이 모두 인성론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는 전국시대 중국 철학의 가장 큰 화두가 인성론이었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또 그 이유는 인격천의 급격한 몰락과 이에 대한 대안적인 요구가 존재하고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성론에 대한 논의는 결말을 보지 못하고 진의 통일을 넘어 한나라에 까지 넘어가게 된다. 한나라의 인성론은 순자의 후예인 순열에 의해서 시작된다. 한무제때 대학자 동중서는 여러 인성론을 제기하게 되는데, 이 중 성삼품설이 제일 중요하다. 이외에도 한나라 초기 유향의 성장상응론이나 후한시대 왕충의 용기위성설 등이 주목된다. 그러나 이런한 논의들 역시 모두 답을 내지 못하고 유교의 쇠퇴와 더물어 인성론에 대한 관심도 낮아지게 된다. 이러다가 위진남북조 시대가 전개되면서 중국은 최초의 이민족 지배와 외래사상이 만개되는 불교를 맞이하게 된다. 

 

 

 

불교는 처음에는 신통과 같은 신이영웅으로 중국인들에게 주목되면서 감명을 주게 된다. 언어와 문화권적인 차이에 의해 문자가 잘 소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신통은 분명 쉽게 다가가서 감응시키기에 유리한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일거에 전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마술이라는 언어나 문자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국 불교의 정착과 관련해서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같은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불도징이였다. 불도징은 마술이 아닌 신통을 사용햇다. 그러나 불교가 점차 중국에 정착되고 안정되면서 중국인의 관심에 맞는 부분들이 부각되기 시작된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전통적인 인성론과 관련된 불성 사상과 유심주의이다. 후일 불교는 중국적인 문제의식을 통해 중국 불교로 거듭나게 된다. 중국 불교를 소위 사가대승이라고 하여 천태종, 화엄종, 선종, 정토종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중 신앙적인 정토종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중국 불교는 모두 불성과 유심사상을 주요 종지로 삼고 있다. 불성과 유심은 모두 인성론과 관련된다. 즉, 중국 철학의 단절된 인성론은 유교를 넘어서 불교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성론의 논리 구조를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역작이 바로 진제의 대승기신론(찬불승 마명이 썼다는 주장 존재)이다. 이책은 불교를 넘어서 중국 철학 전반에 걸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대한 명저이다. 대승기신론의 저자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이 책은 인도와 중국문화에 모두 정통한 불교학자에 의해 저술된 것이다. 또 내용중에는 왜곡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정신이 엿 보인다. 이 시기의 중국불교에서 이런 인물은 진제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제를 저자로 보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자와 맹자를 병칭하여 공맹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맹자는 전국시대 말의 학자인 순자에 물려서 역사의 표면에서 곧 사라진 인문이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불교의 인성론 체계를 상대할 수 있는 유교적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맹자가 재평가받기 이른다. 즉 맹자를 깨워서 성인으로 만든 것은 유교가 아니라 불교인이다. 북송시대의 신유학자 정명도가 죽자 정이천은 맹자 이래로 끊어진 심법을 1400년을 격해서 정명도가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00, 200년도 아닌 14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이 인성론의 공백을 채운 것이 유교가 아닌 불교이다. 그리고 중국 불교의 인성론적인 세계를 통해 유교는 신유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중국의 지리>

254쪽

중국은 크게 유목군사력, 관중의 정치력(농경문화), 문화력, 강남의 풍료로운 물산에 의한 경제력(양쯔강 남쪽 물중심)으로 구분한다  --- 유목민의 전투적인 우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서구의 전쟁사에서 "유목민의 기마병은 독일에서 탱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최강이었다"는 기술이 있다. 관중은 강수략이 적어 논농사가 안된다. 그래서 중국은 논을 뜻하는 한자가 없다. 풍족하지 않는 수확물은 경제 다툼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예론이고 정치가 되는 것이다. 또 적은 것을 서로 나눠 가지다 보니 투쟁이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가운데 문화가 발전한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같은 위도에 나라들이 문화적으로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강남은 유약하다. 풍요로움의 경제력과 관련된 느긋함과 양보의 태도 때문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곽중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과, 3지역을 융합한 중국이 있다. 중국은 3지역이 융합횔때 비로소 로마를 제압하는 세계 최강의 중국으로 세계사에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사에서는 3지역이 합쳐지는 수당을 세계 제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257쪽

중국은 만리장성과 대운하가 큰 국책 사업이다. 만리장성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수양제의 대운하는 위대한 사업으로 꼽힌다. 대운하는 남방의 경제력을 북방으로 끌어들이고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수양제가 처음 운하를 건설하려고 계획한 것은 황제의 배인 용선을 띄우고 강남으로 뱃놀이를 가기 위함이라고 전한다. 대운하는 중국이 발전하는데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3지역을 결속 시켜 하나의 중국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점에서 위대한 국책 사업이였다. 

 

북조와 남조의 대치는 370여년이라는 장기간에 이뤄진다. 유목인들은 안정적인 제국을 건설해 본 경험이 업어서 여러 왕조가 명멸하게 되어 남쪽으로 내려 올 수 가 없었고,  유목지역과 북방만으로도 충분히 넓었다는 점과 유목민들은 큰물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서 넘어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북제의 선양을 받아 문제가 건국한 수나라에 의해서 통일된다. 문제는 한족화된 유목민 계통으로 북조에 의한 통일이였다. 또한 다수의 전쟁 포로들을 근로 시켜야 했기 때문에 수문제에 이어 수양제가 양자강 황하를 연결하는 대운하를 만들게 된다. 대운하는 남으로는 항주인근의 여향에서 시작해서 서로는 수도였던 장안, 북으로는 북경 옆의 탁군을 연결하는 대역사였다. 말그대로 중국의 세로의 대동맥이 만들어졌다. 이로서 중국은 지역적으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통일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지리적 완성 뒤에는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거대 중국이 어떻게 하나로 융합할 것인가로 문제가 옮겨진다. 이 시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은 바로 불교 밖에 없다. 그렇게 대두된것이 바로 수나라의 천태종이다. 

 

<수나라와 천태종>

 

왕조가 오랫동안 분열되면 상인의 자본 요구에 의해서 통일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 상업은 직접적인 권련은 없지만 상업은 보이지 않는 손이며, 이시기 보이는 손의 역할은 관중의 농우 지역의 정치 세력인 관롱집단이였다. 이 시회를 잡게 된 것이 바로 수나라이다. 그러나 수양제의 대운하 걸설과 고구려 정벌등의 독주와 과도한 세금 부과는 상인 자본의 지지를 철회하게 되고, 결국 수나라는 재분열하게 되면서 당나라로 넘어가게 된다. 

 

수나라의 지배 이념은 천태종이다. 천태종은 도교적인 측면과 결합된 불교로 이전까지의 각 종파적인 불교를 하나의 거대한 불교 체계로 완성하려는 종합화 시도를 한다. 아직은 완전한 문화를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종합화가 되어 문제가 생겼다. 천태종이 종합화에 좀 더 높은 무게를 두는 것은 수나라의 통일로 세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시대적인 요청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천태종의 삼제원융, 회삼귀일, 일년삼천 같은 개념이 당시의 시대적인 요청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의 철학 체계는 불교의 진리관에 입각해서 볼때 개별적인 차별일나느 것은 실제로는 운융일 뿐이라는 의미로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잘 부합한다. 즉 천태종은 3지역의 공통분모인 불교를 통해서 하나의 세계 제국에 대한 이론적 토대와 이에 따른 원융 놀리를 이룩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 천태종은 당시 중국 불교의 취약점인 수행에 관해서도 지관법이라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인도 불교 수행법은 더운 기후에 특화된 관법으로 중국문화권을 추운 기후에는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중국 문화권 수행의 특징은 추운 기후에서 흔히 나타내는 열을 내는 방식과 집중 그리고 행동주의적인 측면을 가진다. 천태종 역시 집중을 통한 지관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천태종은 중국 무속에 해당하는 도교의 관점을 상당수 차용하여 민중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햇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를 효율적으로 정리해서 운용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완성되기도 전에 수나라가 37년의 단명 왕조로 끝나게 된다. 수나라의 단면은 과도한 세금징수지만 천태종의 불완전성도 한 몫했다. 융합이라는 관점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역차별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즉 융합은 차별의 논리와 함께 병진되다가 원융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과 관련해서 천태종은 미흡했고 또 인지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천태종에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진시황와 수양제가 없다면 오늘날 거대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사는 지역인 동시에 가장 오랜 문명의 지역이 하나의 거대한 단일 집단으로 유전하는 것은 중국이 유일하다. 이 틀의 완성이 바로 진시황과 수양제이다. 이들의 단명왕조라는 공통점 속에서 다음의 존재하게 되는 한과 당이라는 번성 완조의 밑거름이 되면서 모든 악덕을 안게 된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만리장성과 대운하와 과거제는 오늘날까지 중국을 나타내는 가장 큰 상징이자 세계 문영에 영향을 끼친 유력한 제도이다. 

 

<당나라와 화엄종>

 

 오랜 분열을 통일한 왕조는 다시 재분열하여 하고 다음에 들어서는 왕조는 번성한다. 이는 역사의 공식이고 이런 공식을 만드는 것이 바로 상업자본이다.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을 완성하고 멸망했다는 것은 당나라에서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당나라의 번영은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로 상징되지만 실제로 여기에는 측천무후로 알려진 신성황제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유일한 여성황제지만 중국의 여성 폄하적인 관점에서 그 업적을 고종이나 현종에게 뺏기게 된다. 

 

당태종의 대외 정벌과 왕권강화의 노력과 발맞춘 서유기의 주인공 현장이다. 현장의 법상종은 오성각별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인도의 신분제 사회에서 기인하는 차별적인 질서 원리이다. 이를 통해 세운 왕조는 권위를 수립하게 되면서 왕조의 안정을 꾀하게 된다. 현장의 기행문(대당서역기)는 당태종의 요청에 읳서 제작된 것으로 당의 서역 정벌과 세계 경략에 중요한 지침이 된다. 당태종은 대외 정벌을 통해 왕권 강화하고 반대 세력을 정리하면서 왕조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하지만 수나라의 지배 이념인 천태종을 사용할 수는 없게 되어 다시 불교 안에서 찾게 되는게 그것이 원융의 세계관을 가지는 화엄종이다. 

 

화엄종은 원융적인 세계관을 중시한다. 덕분에 수행론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면모를 보인다. 이는 후일 선종이 대두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천태종은 세계관과 수행론을 아우르려고 했다면 화엄종과 선종을 이를 각각 나누어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화엄종의 원융관은 진리의 평등과 붓다의 평등이라는 이중적인 관점으로 구성된다. 화엄경이 법신이라는 진리의 인격화된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양자는 이중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진리의 평등이란 진리적인 관점에서 일체는 모두 다른 차별상 속에서도 완전함을 갖추고 있다는 원리이다. 또 붓다의 평등은 각기 다른 그 자체가 본래 붓다라는 유기체적인 관점이다. 즉 객관과 주관의 양자 속에서 모든 가치의 다름을 인정하는 완성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서 전체 완성을 현시하는 것이 화엄의 원융관인 것이다. 이는 모든것을 하나로 균일화하려는 평등이 아니라 모든 차별을 인정하는 개별성의 평등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마치 가을 상의 단풍이라는 것이 실은 모든 나뭇잎들의 부조화일뿐이지만 이러한 부조화가 모여서 거대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모든 단풍이 같은 빛깔이라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단풍속에서는 도저히 균질화될수 없는 다양한 색의 향연이 존재한다. 특정 기준을 세우지 않고 그 자체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바로 단풍의 아름다움이고 화엄은 이것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는 비교할 수 없는 자체적인 완결성을 가진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전체는 또다시 통체로서의 완성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속에서 중국의 3지역과 새롭게 현입된 모든 지역과 문화들은 그들만의 차이점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전체적인 완성을 이룩하게 된다. 화엄사상은 이를 화엄경이라는 경전을 통해서 좀 더 체계화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3국의 통일을 했을때 통일실나에서도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이 유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융은 당시로서는 이상적인 걳이지 완전한 원융을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라라는 통일의 주체와 고구려와 백제라는 망국의 편입대상은 결코 평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원융은 100년 뒤 완전한 자신감이 생긴 이후에 불국사의 건립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불국사 즉 뭇다의 나라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각기 다른 차이 속에서도 차별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국사 역시 사상적인 틀안에허 화엄과 관련되어 이룩된 것이다. 

 

<개인화의 대두>

 

당은 안정화가 되고 화엄종에 의해서 다민족과 문화의 통합을 성공하면서 세계 최강 제국이 된다. 이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모든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로 바뀌게 된다. 경제적 안정은 문화수준을 높이는 배경이 되며 점점 집단적인 사고에서 개인적인 사고로 개인화가 되어 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화두는 개인의 행복이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으로 객관적인 기준이나 판단에 의해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병상이나 심리상담과 같은 주관을 바꾸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의 개인화의 꽃으로 대두된것이 바로 주관적인 마음의 수행 문화인 선종이다. 선종은 화엄종에서 주장하는 개별의 가치를 손상하지 않는 통합의 가치 위헤서 전개되는 중국적인 관점에 의한 불교식 수행론이다. 이는 당시의 개인화에 대한 요구와 맞아떨어지면서 일거에 중국 사상계의 판도를 뒤바꾸게 한다. 

 

강북의 관중 문화는 집단적인 성격이 강하다. 개인과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강남이다. 강남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문화는 강북보다 떨어지고 있었고 한족의 본토가 아니라는 점에서 강북보다 차별받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6조 시대를 거치면서 강북이 유목 준화에 의해 재단되었지만 강남은 한족들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강남 문화가 강북 문화를 역전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육조시대의 예술발달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강북의 강남에 대한 차별은 성당시기까지도 유전된다. 이를 단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종의 완성자인 육조혜능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육조단경에는 강남 관둥인인 혜능이 기주 쌍봉산의 오조 홍인을 찾아갔을 때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너는 영남인으로 오랑캐인데 어찌 감히 붓다가 될 수 있는가?" 그러자 혜능은 "사람에게는 비록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게는 남북이 있을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는 강남인에 대한 차별정서가 혜능에게도 있었고, 홍인에게 말대답하는 개인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늘날도 행자가 큰 스님을 친견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말대답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이는 고압적인 강북문화와 개인화된 강남 문화를 잘 대변해준다.

 

선종이 오조 홍인에 의해 상당히 번성했음에도 강남인인 혜능을 기다려서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것은 강남의 개인문화가 선종과 잘 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선존은 혜능쪽인 남종선의 기록과는 달리 주류는 장안과 낙양에서 활약한 북종선 계열이였다. 그러나 당현종 때 안사의 난을 겪으면서 강북은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강남이 경제력과 문화력이 강북을 앞서게 된다. 이때 남종선은 북종선을 누르고 선종의 주류가 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활약한 인물이 바로 하택신회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강남의 개인주의가 아니라면 돈오라는 철저한 주관주의적인 관점 환기의 꺠달음이 불가능하다는 측면 역시 작용했다고 하겠다. 

 

<불성의 재발견>

 

혜능의 인간본성에 대한 재발견 즉 견성사상은 소위 육조혁명이라고 한다. 견성은 견불성의 준말이다. 그 뜻은 우리 모두 본래 부터 붓다를 내포하고 있으니 이를 자각하기만 하면 곧 붓다가 된다는 것이다. 불성은 인도 불교에서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의미인 여래장을 주로 사용한다. 여래장이란 붓다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삼세 윤회를 믿는 인도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은 미래에 붓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발심하면 언젠가는 붓다가 된다느 논리이다. 미래에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씨앗속에 나무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처럼 말이다.이 것을 여래의 가능성 즉, 여래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은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을 주장하며 삼세가 아닌 현세만 인정한다. 이렇게 되면 미래의 어느 생에 붓다가 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또 붓다라는 완전성이 미래에 존재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일반적인 상대 체계적인 조건에서의 가능성과 완정한 완성은 논리적 층위가 다른다. 아이에게 어른의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아이가 곧 어른은 아니다. 붓다와 같은 완전체의 경우 가능성성은 곧 완성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오나전한 것은 불완전이 변화되어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완성이란 현재에도 완성된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붓다는 완전한 존재이기에 기래의 가능성이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은 현재에도 붓다여만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므로 현재 붓다의 존재가 가능성의 측면일지라도 현재 내재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지금의 현실태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아니면 불완전한 존재는 어떠한 조건이 경과해서도 완전한 존재가 될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붓다가 될 수 없다. 이는 유한이 아무리 증대되어도 무한이 될수 없고 무한은 아무리 나뉘어도 유한이 될 수 없는 이치 때문이다. 중생이 미래의 붓다가 된다는 것은 불교의 종교적인 관점의 주장으로 이는 믿음의 영역이 된다. 대승불교는 이를 대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대전제를 수용하는 대승불교 안에서 이것은 무조건 적인 참이 된다. 이는 연역 논리에서 대전제가 참이면 결과가 참이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 중국철학에는 불교 전부터 존재하던 인성론과 관련된 성선설 주장이 있다. 이는 불성이라는 측면과 본질적인 선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왜냐하면 붓다가 불교에서 완전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선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불교에서 여래장이 불성으로 번역되는 것이 중국의 인성론적 배경에 그 이유가 있다. 성이라는 한자는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불변적 속성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불성은 수행을 통해 확보된 것이 아니라 본유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완성된 가치이기 때문에 관점의 환기를 통해 이해하면 끝나는 문제가 된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지 눈동자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니 눈을 뜨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혜능의 돈오가 된다. 이것이 육조 혁명의 견성성불의 의미이며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육조혁명이라고 까지하는 이유는 본질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는 역발상적인 인식 사고 때문이다. 이는 일원론적 중국 철학의 특질과 맞아져 일상의 재발견으로 연결된다.

 

<선의 미학>

 

깨달음의 방식 문제에서 돈오와 점수의 문제는 관점의 환기를 통한 실존에 대한 재인식, 혜능계 돈오설의 승리로 끝이 난다. 즉 깨달음은 수행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가치에 의한 자각의 재발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후 비대해진 혜능계안에서 돈오 후의 수행문제인 돈수와 점수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소외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논쟁인 것이다. 이 논리는 돈오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면 그 이후라는 부분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돈오 그 자체는 어떠한 경우에도 수행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돈오에는 수행이 붙을 곳이 없다. 이것이 돈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므로 돈오점수라는 개념은 돈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하는 사고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쟁이 발생한 것은 돈오라는 관점 환기가 이루어진 뒤에도 현상적인 변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관점이 바뀌어도 우리의 인식에서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과 지구가 돌지 않는 다는 말이 된다. 즉 이해와 현실적인 인식이 다를 수 있는 부분에서 돈오 이후의 수행의 문제가 촉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오라는 개념이 본래부터 문제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돈오점수의 논리는 어떻게도 성립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는데 왜 꿈에서 깨지 않느냐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원론인 중국문화에서는 꿈이라는 자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깸을 통한 또 다른 세계로의 전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을 자각해서 깬다는 것은 인도의 이원론 배경에 존재하는 것이지 중국관점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종은 이 문제를 현실 긍정의 관점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즉 현실은  꿈과 같이 헛된 것이지만 부정의 대상이 아닌 대긍정의 유희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깨달음과 평상심>

 

일원론의 꺠달음은 현상적인 현실과 결코 유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실의 관점 환기를 통한 대긍정으로의 전환, 이것이 깨달음이 된다. 그래서 평상심이 진리일 뿐이라는 평상심시도와 같은 논리가 전개되는것이다. 그러나 평상심이 도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나 얻지 않는 것에 대한 현상적인 차이가 없게 된다. 그렇지만 양자 사이에는 주체적 자각이라는 차이가 있다. 마치 꿈을 모르면서  꿈을 꾸는 사람은 꿈속 현실에 따른 속박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꿈임을 자각하게 되면 속박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과 같다. 즉 현상적인 차이가 아니라 이해에 따른 인식적인 자율성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일원에서는 깬다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현상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측면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실 긍정론은 중국철학의 기본 배경으로 상고주의나 역사주의와 같은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 정신과 권력의 성취의지와도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중국 불교는 자각을 통해서 깨어난다는 인도 불교의 비역사주의적 관점과는 큰 차이를 가진다.

 

<현실 긍정과 행동주의>

 

현실이 곧 깨달음일 뿐이라는 현실에 대한 긍정은 행동주의를 파생하게 된다. 현실 자체가 깨달음인 상황에서는 현재를 사는 것 이상의 수행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것은 그 자체가 깨달음을 펼치는 것이기도 하다. 수파니파타에서는 붓다는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명상에 잠겨있다는 초월명상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원론의 선종에서는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면 깨달음이 아니다. 그리하여 선종은 여래선과 조사선이라는 차등의 논리를 전개한다. 종교란 인간의 행복 추구와 관련된 기호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답을 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될 수 있다. 선종의 깨어있음은 일원론 상태에서 순환론을 전개하는 중국 철학에서는 필연적적인 귀결이 된다. 그래서 깨달음은 변화라는 작용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작용시성과 전체작용의 논리를 파생하게 된다. 즉, 전체가 활발발(늘 생생하게 살아있음)한 경계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동정의 가치는 모두 다 깨달음의 군상이자 그 현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종의 현실 대 긍정과 변화를 깨달음으로 수용하는 관점은 '굳이 출가할 필요가 있나?'라는 신유학의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이 문제로 후일 동아시아 중구 문화권에서 불교가 2선으로 물러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선종은 이를 적절히 변증하지 못했다. 선종은 주관에 의한 미학적 시각을 통해야 할 것을 일반화와 혼동하게 됨으로 결국 적절한 해법 도출에 실패하였다. 

 

자각은 주관에 의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선종은 주관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사실에 대한 객관의 문제는 없고 그러한 사실을 수용하는 주관의 문제가 초점인 것이다. 이렇기에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관의 매몰에 따라 발생한 사회와의 관계, 윤리학의 성립 근거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마치 꿈을 꿈이라고 자각하게 되면 나의 인식에 대한 상대적인 측면에 없기 때문에 윤리적 근거가 상실된다. 이것은 이후 신유학에서 선종을 비판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선종은 철저히 개인의 주관주의에 입각한다는 점에서 철학을 넘어 선 미학의 영역에 있다. 마학적 판단에는 기준이 없다. 이것은 선종의 윤리 문제를 해소하는 해법이 된다. 그러나 후일 송나라(집단주의)에서 개인화는 설득력이 적어진다. 이것이 선종이 신유학에 밀려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날은 개인화 사회에서는 큰 장점이 된다. 스스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규칙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개인화를 통한 집단의 존속이다.그러나 당시 선종은 중세라는 사회발달 한계속에서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고, 이는 신유학적인 비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279쪽

 

개인주의가 사회보다 개인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면, 종교적 이기주의는 종교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이 더 특수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특정 종교의식을 통해 그 사람은 좀 더 강한 가피라는 에너지를 통해 특화된다. 또 종교적인 신성한 보호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반대의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82쪽

대승불교가 보편적인 붓다화, 선종은 주관중심이 깨어남, 밀교는 소수를 통한 특화를 말한다.

 --- 진언은 인도적인 관점에서 언어에 대한 신뢰문화에 기인, 중국은 문자보다는 기호에 대한 신뢰가 높음(상징), 그 기호의 주술성이 바로 부적이다. 밀교는 관상을 동반한다. 관상은 특정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다. 달이라고 하면 달을 떠올리는 형상이 관상이다. 관상은 무더위와 공간성을 중시하는 인도문화이다. 그러므로 시간 중심인 중국과는 다른 가치이다.--- 붓다가 된 나는 붓다의 눈으로 세계를 관조한다. 이때 완전히 조화롭고 긍정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밀교로 오게 되면 인도 불교의 치안과 피안의 구조가 사라진다. 고통속의 차안이 곧 관점의 환기에 의해 그래도 피안으로 깨어나게 된다는 인식이 수립된다. 이 결과 도출은 인도 불교의 꽃이라고 말한다. 붓다가 된 인간은 자비의 화현으로 걸음마다 거룩하고 몸짓다가 성스러워지는 삶을 하는 것이다. 

 

이제 비해 선종은 나를 바꿔 붓다가 되지않고, 붓다를 바꿔 내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기 본연의 당당함이다. 그것이 바로 선어가 된다.(내가 붓다다! )  밀교의 번잡합과는 반대로 단도직입의 존재가 선종이라는 점은 인도 문화과 중국 문화의 차이를 보여 준다. 단순 명료함으로 화려함을 굴복시키는 가치 그것이 선종에 있다. 그것이 선의 미학인 것이다.                                                                                                                                                                                                                   

286쪽

인도 불교의 중국진출로 중국 불교가 성립된 후 계속해서 자극제의 역할을 했던 것이 인도적인 사고의 인도 불교였다. 인도 불교에 의한 외부적인 충격과 중국 불교적인 변형이 중국 불교의 발전 형태였다. 하지만 본토의 경기 둔화는 중국 불교의 발전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 

 

288쪽 

회창난법 이후 불교는 치명상을 입는다. 경전이 없어 고려에서 경전을 구하게 되었고, 교리 중심의 교종의 피해는 컸다. 선생들도 대규모 숙청되어 책이 있어도 공부를 못하게 된것이다. 이는 불교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 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 이에 비해 선종은 관전 전환이라는 명상주의를 택하고 있어서 산에 들어가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유목민화) 사원도 없고, 사회적인 경제 지원이 없어지자 불교는 교종이 아닌 선종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것이 선종의 실질적인 독주 체제가 갖추게 되는것이다.  선종은 교종의 체제 안정과 교리적인 번쇄함을 비판하면서 인식론적 전회를 통한 일상의 재발견을 제창한 종파이다.  --- 선불교 중심은 전체적인 하향화와 선종의 비윤리성이 표면화 된다.  이후  인도 불교의 외부의 자극이 줄고, 회창법난을 통한 내부적인 파괴는 중국 불교의 몰락을 가져오고 유교가 불교를 거치면서 재정비되는 신유학에 의해서 불교는 점차 비판받게 된다.

 

293쪽

불교는 개인 순환론과 상업을 바탕으로 전개 되고, 유교는 집단주의와 농업 문화로 낮은 경제력과 서민적인 보편성을 우선시 한다. 농업 왕조들은 경제력 부족, 군사력 부족으로 고급 문화가 쇠퇴하게 된다.   또한 농업은 노동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출가를 꺼린게 된다. 또한 농업주의는 단순 반복적인 생계로 순박하여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고, 땅 중심이기 때문에 관리가 쉽고 순종적이고 충심이 강하다는 측면이 있다. 상인들은 이익을 위해 머리를 쓰고 의리를 진다는 점, 주거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에서 통제가 어렵다.

 

295쪽

원래 당나라의 선은 말이나 의표를 찌르는 행동을 통해 즉각적으로 상대의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율성은 강함과 유염함이 공존하는 고등한 문화적 가치이다. ---- 개그는 원숙함의 여유인 것이다.   --- 그러나 회창폐불 이후  불교의 질적인 저하와 한족 문화의 폐쇄성은 선종의 정신을 제도적인 방식으로 수정하면 안되었다. 그때 등장하게 되는것이 대혜 종고의 간화선이다. 이를 통해 선종은 파격적인 형식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대혜의 간화선은 화두 즉 일반적인 사고 판단이 안되는 모순 명제를 가지고 계속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강한 집중은 전환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언게 된다. 마치 석탄에 고도의 압력을 가해서 다야몬드로 만드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선은 말과 행동을 생각의 틀을 깨고 관점을 환기시키는 것이지 앉아서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전하는 일화가 마조도일과 남악회양이다.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 좌선한다고 붓다가 되냐?)

 

돈오라는 깨달음의 방식에는 어떤 방향에서도 수행이 붙을 수 없다. 관점의 환기는 인식의 전환이지 수행의 결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송나라 때 이런 당나라에서 부정된 방식이 선종의 본류로 전환하게 된다. 이것은 불교가 퇴보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의 방식은 활력을 주지 못했다. 대혜종고는 사회적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에서 선을 체계화하여 선종을 구하고 부활시켰지만 이것에 의해 선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선종은 다시 2선으로 물러 앉게 된다. 

 

297쪽 

북송은 불교의 사상계가 장악이 점차 약화되는 시기로, 신유학의 토대가 다져지며 도교가 유행하게 된다. ---- 성리학에는 명분론과 배타 정신이 가득하다(나는 바르지만 힘이 없을 뿐의 정의론) --- 주자는 오랑캐인 금나라를 정의로운 남송이 못이기는 가에 대해 오랑캐 문화의 중국 유입이라고 말한다. 이것에 의해 불교가 비판하게 된다. 육조시대 남조의 지식인들도 이러한 상황에서 죽림칠현과 같은 현실도피를 선택했다. 주자는 남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둘다 방어기제라는 점은 동일하다. 관점만 다르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 이러한 성리학의 관점은 당쟁만 초래하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300쪽

선은 철학보다는 실전적인 미학이다. 그러므로 신유학의 철학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하다.  ---- 신유교는 유교라는 정치철학 중심의 종교화이다. 수양론 중심의 신유교가 종교철학이 되어 버린다. 이는 정치를 지향함녀서 수신을 강조하는 모순적인 문화가 나온것이다. 예로 퇴계가 도산 서원에 있으면서 정국에 간여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산림에 은거하며 고결한 듯 하지만 뒤에서 조정하는 이율배반적인 구조가 연출되는 것이다. 이는 정치에도 재앙이고 종교에도 재앙이 된다. -- 중국의 관리 임용의 과거제에는 유교가 잡고 있었고, 그 사서의 주석을 주자가 달았기에 신유학은 성공하게 된다. ----  남송의 주자는 북송오자의 사상을 집대성하게 된다. 이를 주자학이라고도 하고 성리학이라도 한다. --- 심학은 명나라 왕양명을 그쳐 심리학, 양명학이라도 한다. 신유학은 이렇게 성과 심의 차이에 의해 성리학과 심리학으로 갈리게 된다. 중국 불교는 본성과 마음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신유학을 이를 구분하여 성과 심의 차이를 부각한다. 성은 마음안의 본질이고, 심은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논리적 층위가 다르다. 즉 인간의 본질이 핵심을 보면 성리학, 포괄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명학이다. 

 

 

305쪽

성즉리를 통한 구현이 성리학이다. 성즉리란 인간의 마음안의 본성과 외부의 천리를 곧 같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화엄종에서 말하는 심즉불이나 선종의 견성즉불과 논리적으로 매우 유사한 구조가 된다. 이러한 중국 불교의 문제의식은 중국 철학의 천과 인간의 심성과의 관계인 인성론을 이어 받음이다. 이것은 중국철학의 인성론이 제자 박개의 인성론과 중국 불교를 거쳐 신유학으로 유전하면서 중국상을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의 결합을 중국철학에서는 천일합이라고 한다.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철학의 분류는 인성론이며 그 목적은 천인합일이라것을 알게 된다. 결국 중국 불교는 유교를 누르고, 성리학은 불교를 공격했지만 이들은 모두 인성론이라는 하나의 사슬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다른 것은 붓다와 합일이나 천과 합일이냐의 차이이다. 이러한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불교는 종교이고 유교는 현실위주이기 때문이다.  

 

화엄종의 세계관에서 확인되는 사사무애와 같은 측면은 현실에 대한 철학적 인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선종의 평상심이 도라는 일상의 재발견이라는 주장은 왜 평범함 삶을 살지 않는가?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가정생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사실 중국 불교에서 살펴지는 현실긍정의 논리 구조에서 이러한 신유학의 비판을 반박하기에는 대단히 어렵다. 신유교는 홈경기의 이점을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리학에서 비판하는 중국 불교는 선종이다. 선종의 비사회적인 개인화와 자율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리학은 모든 것을 제대화 하고 규격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의 심성적인 가치도 포함된다. --- 성리학의 전체적인 질서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고 하는 점은 화엄종 세계관과 유사하다. 화엄종의 세계관 제시와 이를 넘어선 개인화이 선종, , 그리고 다시 개인화의 비규정성이 문제가 되자 전체 질서의 성리학이 대두되는 것이다. 다시 세계가 안정되면 다시 개인화가 강조되고 이러한 흐름속에 등장하는것이 양명학이다. 즉 화엄종-선종-성리학-양명학의 순환인 것이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화엄종과 성리학 선종과 양명학의 유사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 구조를 끌어 올리면 맹자와 순자의 대립적 구조와 만나게 된다. 순자- 화엄학- 성리학이 한축이 되고, 맹자- 선종-양명학이 한축이 된다. 이는 집단과 개인 그리고 보수와 개혁이라는 인간에게 내재된 두 부류의 요구에 각기 부응한 것이다. 

 

 

308쪽

남송시대에 성리학이 주자에 의해 완성될 떼, 사상적인 경쟁자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육상산이다. 육상산은 우주가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우주다. 유교의 경전은 모두 내마음의 각주라고 한 철저한 유심론자이고 주관주의자이다. 그러나 마음의 깨달음을 중시하고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당대에 주자와 같이 하나의 학문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리서 심리학은 명의 왕양명에 의해서 완성된다. 주자와 육상산이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은 남송시대가 변화를 요구했다는 뜻이다. 주자의 성리학이 완성되었다는 것도 당시의 요구가 주자적인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양명학은 본마음의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선종과 유사하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에게 유교 옷을 입은 선종의 변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심즉리는 돈오와 같은 것으로 현실 긍정과 행동주의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왕양명은 지행합일이라고 해서 아는것을 실천하는 것을 강조했다. 선종과 다른 점은 입세를 말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유교는 인간을 좀 더 특수화한다는 점이 있다. 대승불교는 불육식을 주장하지만 유교는 살생은 어짊이 아니니 꺼린다고 제한하는 정도이다. 신유교는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지만 유교인것이고, 중국불교는 중국 철학을 입지만 역시 불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