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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경전의 말씀을 깨우치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은 한결같이 사랑과 행복의 그림자가 미움의 불행이며, 미움과 불행의 그림자가 바로 사랑과 행복이라는 확신을 내게 남겼다. 

 

그들은 또한 생의 고통와 아픔은 사랑의 씨앗을 심는 작업이며 뿌리깊은 내면의 무지를 두들기는 작업임을 말해주었다. 언젠가 사랑을 성장시키고 완성하는 날, 자기 집착과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상대방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날, 마음의 고통과 방황도 끝난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최상의 지혜는 완전한 사랑, 자비이다. 

 

사랑과 자비는 고통의 근본 원인인 무지를 제거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제1장 결혼 가정 행복

18쪽

능가경에 행위는 있어도 행위자는 없다

이미 천리밖으로 사라져버린 남편의 관심이나 애정은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할수록 더욱 더 자심의 삶만 망가질 뿐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보살님의 자신의 의지와 결단력에 있습니다.

 

33쪽 

사랑은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존중과 신뢰,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싹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고 즐겁게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책임감이 조금씩 더해 가는 기분은 피할 수가 없었다.

 

44쪽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누구에게 있든 자기가 사랑하고 싶거나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거나 분노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가 스스로 그 분노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원망을 확실하게 해결하기 전까지 결혼을 보류하는 것도 서로를 위해서 필요하다. ---- 왜냐하면 아동기에 형성된 미움이나 원망의 에너지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47쪽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 아는 법이다. 남을 이해나는 일도 이해를 많이 받아온 사람이 더 잘한다. 

 

60쪽

머무름없이 집착없이 머무르라는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뱃속에 있는 아이는 자신과 하나라

고 치더라도 이미 출산의 고통을 통해서 둘이 되었음에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하나라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71쪽 

부모들은 자식의 반항이나 애교가 모양만 다를 뿐 결국 자신들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똑같은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귀엽고 애교스러운 자식이 마치 더 효성스러운 자식인 줄 착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가정은 아이가 성공적인 성장과 사회생활을 위해 준비하고 연습하고 있는 곳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아이의 정상적인 책임능력이나 성장을 방해하는 지나친 보호와 돌봄은 아동학대만큼이나 해롭다고 할 수 있다. 

 

75쪽

아이들의 의욕보다 부모들의 의욕이 더 강하거나 앞서있으면 아이들은 자신의 그 분야에 취미나 소질이 있는지 미쳐 체험하기도 전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음악, 미술, 독서등 다양한 선택적 활동을 통해서 상상력을 동원하는 창의적인 놀이로 의식의 세계를 확장하고 존재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대신 삶의 무게와 압박을 체험하고 일찍부터 스트레스 속에 살게 된다. ----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기 떄를 기라디로 알아볼 줄 아는 그들의 능력 뒤에는 그들을 키워준 부모가 있었다. 

 

 

제2장 참나 찾기

95쪽

공양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부처님에게는 아름답고 추한것이 따로 없다고, 눈물이 나면 눈물 자체를 공양하라고 어차피 부처님은 당신을 예배하거나 공양을 원하신 적이 없다

 

104쪽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상호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일방적으로 서운사 불자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나를 가르치는 길이다. 이유는 세상사는 이치가 불법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진리를 구하거나 말하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대로 되어지는 종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불교는 결코 인간을 주체와 객체로 파악하거나 주인과 종이라고 하는 위계를 가정함으로써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와 나에 대한 차별심이 선과 악을 만들고 갈등과 미움을 만들기 때문이다. 불교는 절대 평등한 종교다. --- 인간관계엇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것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주었거나 적게 받았따는 잘못된 계산에서 비롯된다 

 

112쪽

늦게 대학을 간 이유는 공부자체가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공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참아낼 만한 인내심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학을 감으로써 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16쪽

말이 많은 사람들은 교리시간에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뒤틀린 마음의 모양으로 앉아 잇었떤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단한번도 자신이 지금 그 자리에 왜 앉아 잇는지조차 의심해 보지 않는 것 같았다.

--- 먼저 자기 성찰이 선행되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의 바른 의미를 깨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올바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 주는 관심이나 의생이 어떻게 바르기만 하겠는가 ---- 그들은 기도하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들의 기도는 마치 소화제나 일시적인 진통제의 역할을 했을 뿐 소화가 안되는 이유나 두통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을 살펴보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끊임없는 조언을 원했지만 사실은 전혀 들을 귀가 없었다

 

123쪽

관심이 내며을 향해 있는가 내면을 향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관심이 자기 성장을 촉진하고 의식의 발달을 가져다 주는 본질적인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128쪽

누군가가 지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부처님의 특별하신 가피가 내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지금 아파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자신이 이생에서 반드시 깨닫고 훈련해 가야할 엄청난 삶의 교훈과 지혜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통의 종류가 무엇이든, 잘못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은 상대방의 배신이다 어긋난 기대가 아니라 어차피 무상한 대상에게 그릇된 기대와 믿음을 가진 자신의 무지가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라면 부처님 앞에 끓어 앉아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좌절과 고통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생의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붇고 또 물어야 한다. 적어도 그 고통의 일으킨 자신의 무지를 깨뜨릴때 까지는 그는 포기 하지 말아야 한다. 

 

135쪽

서양의 정신치료는 실제로 명상용법을 통해서 환자치료에 성공한 사례들을 수업이 보고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서와 논문들이 무수히 발표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서양의 명상 요법이 단순한 정신건강과 심리치료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 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동양의 참섬만큼 깊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성불을 위한 궁극적 노력에 앞서 당장에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가장 인간적인 특질들, 질투심, 차별심 그리고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마음들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실제적일지도 모른다.

 

136쪽

정서적 아이큐

1. 매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상태를 인지하는 자각능력

2.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기분조정능력

3. 항상 매사를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안달복달하지 않는 자발적인 동기능력

4. 당장의 욕구나 충동을 잘 조정함으로써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충동통제능력

5.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아는 대인관계 기술능력

 

마음은 정서적 측면과 인지적 측면, 그리고 그둘의 함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의지적인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큐를 인지적능력에 한정적으로 사용해 온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한 개인의 진정한 인격은 그 절대적인 부분이 정서적 요인의 조화와 균형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은 온통 지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나머지 두 마음의 요인을 등한시 해왓다. 그결과 우수한 지적능력의 정서적 불구자를 양산해 왓다. 

유독 인간만이 한계를 모르고 만힝 먹어서 비만증에 걸리고 먹지 않아서 식욕감퇴증에 걸리며 병적으로 재물을 긁어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서부조화에 의해서 초래된 결과물이다. 

 

안정된 정서적 바탕위에 쌓여진 것이 아니라면 그 위대한 사상과 철학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가. .왜냐하면 사상과 철학은 지적인 것이지미나 그 사상과 철학을 현실 속에서 객관적으로 실현하는 의지력은 바로 정서적인 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원천은 전적으로 정서적인 힘에 달려 있으며 한 개인의 성숙도나 신뢰도 역시 따지고 보면 책임감이고, 책임감은 바로 의지력과 관련되어 있으며 의지력은 건강하고 안정된 정서적 바탕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 자신의 삶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 정서적 바탕에 의해서 판이하게 달라진다. 동시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적능력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바탕에 따라서 사회를 이롭게 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정말로 균형잇고 책임잇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사회 전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돕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지적이 능력이 아니라 정서적인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지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점점 더 내면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그것이 각종의 마음병을 낳고 그러다가 만나게 되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다.

 

140쪽

진정한 종교적 훈련은 그냥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상의 작은 행동부터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제3장 성장과 변화 그리고 만남

 

156쪽

너와 나는 다르다는 차별심을 내기 보다 다 함께 어우러져 보다 평화롭게 조화롭게 사는 평범한 도를 익혀보는 것도 좋을 듯 한다. 성불할 수 있는데 못하는 거나 성불할 수 없어서 못하는 거나 성불하지 못하기는 매 한가지인데 차라리 갈수록 삭막해지고 거칠어지는 우리의 정신환경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158쪽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지만 성공감은 너무나 쉽게 교만심을 낳고 실패감을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 --- 인정받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가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서로를 칭찬하고 인정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만심은 다같이 잘하고 성공하기 보다는 내가 더 잘하고 더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 심해지만 상대방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실패인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살님의 아만심은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의 집의 크기나 수입의 정도라는 잣대로 평가함으로써 아애심의 반작용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 아애심(자기 사랑하는 속성) 무조건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데 못난 자기를 사랑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진정한 이유는 못단 자기를 인정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비교하는 삶은 반드시 실패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삶은 우리들 각자에게 너무나 고유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잇는 성질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알수 없는 서로 다른 출발점으로 부터 서로 다른 조건에서 끊임없는 성장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굳이 비교해야 한다면 남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잘나고 괜찮은 자기를 선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보다 잘나게 만들고 내일의 나를 더욱 잘나게 만들어야 한다. 

 

172쪽

마음공부나 마음수행은 역시 신구의 삼업을 닦는 일로 귀결된다. ----  감정조절이 안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174쪽

탐진치 삼독을 자신의 마음에 차례대로 적용해보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본 다음 신구의 삼업과 십악참외 백팔참회기도를 통해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수행방법을 실천한다.

* 십악참회 

신: 살생, 도둑질, 삿된 음액

구: 거짓말, 사탕발림말, 이간질, 악한 말

의: 탐진치

 

마음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고통에 직면했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 고통을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무지를 문제 삼아야 한다. 1. 인과의 무지(일방적인 소통은 보복을 가져온다), 2. 극단을 피한 중도적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것 3.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무지

 

반야경에는 부처님은 진실로 자신이 부처인 이유가 자신이 부처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은 자신을 중생과 동등하게 생각하고 항상 중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을 지녔던 것이다. 

 

180쪽

변화를 위해서 종교를 찾는다. 팔자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 성격의 원인은 자신에게서 출발하기 댸문에 업의 원리를 쉽게 받아들이고 깨우치면 된다. 업의 원리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은 남의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바꾸면서 살아가기 떄문에 그들의 팔자는 자신이 변화하는 만큼 좋아진다. 

 

185쪽

주어진 역할에 불평을 하거나 원망하기 보다는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보다 잘나고 성공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욕구이다. 누구든지 현재의 자기 위치보다 더 발전하고 싶어하는 것은 건가아고 바람직한 욕구이다. 우리는 그러한 욕구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깨어날 때 깨어나더라도 아직은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의 근기로는 무조건 욕심을 버릴려고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자 씨름하기보다는 차라리 욕심을 올바르게 성취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는 모른다.

 

191쪽

미치도록 권태로웠던 대학시절의 어느 봄날 마치 고삐에 끌려가는 망아지 마냥 강의시간에 맞춰 게으른 몸을 일으켜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만약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면 얼마나 지겨울까하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엄슴했다. 이것은 아주 크나큰 형벌같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멀지 않는 날 굳이 죽을려고  애쓰지 않아도 반드지 죽게 된다는 그 사실이 즐거워서 한 순간에 권태를 잊고 신나는 하루를 보냈던거 같다.

 

202쪽

자신의 행복을 위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불교의 진리는 그것을 너와 내가 하나라고 가르친다.

 

213쪽

그들은 우리들처럼 자신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무조건 수용할 만큼 내면이 비어있거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결어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민족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을 사랑한다. 진정으로 자신을 믿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남의 칭찬이나 인정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제4장 깨달음을 향해서

 

218쪽

서양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불교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철학으로서 그리고 실제생활에서는 그들의 삶에 구체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실용적 수단의 모습인거 같다. --- 선은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명상이고 살아있는 순간이 사실은 수행의 여장이라는 사실에 힘입어 선무당이 사람잡는 식의 과오를 저지지르고자 한다. ----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은 아니지만 때가 오면 다시 해보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과 세속적인 욕구충족의 좌절에서 오는 일시적인 후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시말하자면 마음을 비우는 일은 오직 참선과 명상을 통한 치열한 구도의 길이다. 

 

228쪽

술과 커피는 판단할 아무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술을 놓고 삶을 관조하면서 즐길 줄을 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왜 마셨는가 보다 중요하다. 그것보다는 마음의 산을 정복하기에 알맞은 철저하고 올바른 사상과 철학이 오히려 중요하다.

 

230쪽

다시 말해서 아라한과를 이상으로 수행하던 소승에서는 율의계로 충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비와 중생제도를 중요시하는 대승에서는 요익중생계와 같은 보다 높고 넓은 차원의 계울이 필요했을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이와 같이 계율의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는 바로 우리 사회와 이웃을 이롭게 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계율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인식과 사용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240쪽

경전의 문구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나름대로의 느낌을 찾아 자신의 내면을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분노하는 자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자기를 만나고 때로는 질투하고 사랑하는 자신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자신과의 만남은 다시 일상 생활속에서 각성되고 정화되어지면서 자아발견과 자아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경전 문구를 해석하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쏟거나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머리에 옮길려고 하면 느낌과 감정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경전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여행하는 길잡이, 지도의 역할을 하므로 각자가 실제로 자신의 내면 세계를 탐색하고 여행하지 않으면 경전 공부는 쓸모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행안내자나 지도는 실제로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경우에 그 가치와 고마움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슴으로 생생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과 인간관계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과 모습을 성찰하고 자신의 고총 해결을 끊임없이 갈망할 때 가능하며 또한 그 가르침의 위대함에 놀람과 경이로움을 감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의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잘 와닿고 감동적인가 하는 문제는 평소 생활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잘 챙기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246쪽

서양의 정신치료와 불교는 똑같이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그 목표로 하지만 중생의 마음에 초점을 맞춘 서양의 정신 치료와는 달리 불교는 처음부터 부처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부처가 되기 위해서, 부처가 되는 과정에서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중생의 마음을 이야기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서양정신치료는 중생의 근기에서 중생의 마음 설명한 것이고, 불교는 깨달은 자의 시각에서 깨달음의 세계가 중심이 되고 중생의 마음 또한 깨달음의 경지에서 설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효과적인 경전공부를 위해 자신의 무지와 마음의 병과 고통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일상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체의 고통에 대해서도 자신의 무지와 마음의 병을 문제삼아야 한다.

 

= 육도윤회와 서양심리학 = 

정신의학자 마크엡스타인은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생각"이라는 구절은 능가경에 "행위는 있으되 행위자는 없다"라는 구절에서 낸 아이디어로 보인다. --- 앱스타인은 육도를 6개의 독립된 세계나 장소로 보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인간심리의 갈등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개인의 마음상태에 따라서 육도를 수시로 떠돌며 체험하는 것으로 보고 그에 따른 원인과 해결을 정신치료 방법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엡스타인은 서양심리치료는 지금까지 한 가지 증상, 육도 가운데 어느 한 영역에만 치우쳐 치료했기에 나머지 영역을 다루지 못했다. --- 그리하여 애욕을 가진 환자가 한가지를 치료하면 오래가지 않아 질투심이나 공격성등이 다른 중생심과 부조화로 마음의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불교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해도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다하고 복이 다하면 다시금 육도를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아야 하듯이 지옥고를 면했다고 해서 아귀고나 축생고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엡스타인은 환자들이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 마음의 육도윤회를 끊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시도할 것을 제안한다.--- 수없이 많은 생을 반복하면서 물리적 공간적 육도를 윤회해온것 처럼 우리는 또한 현재의 일생동안에도 정신적 심리적 육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집착하고 원망하면서 순간순간 고통스러워한다.  비록 마음의 육도를 들여다보는 것이 생사를 해탈하는 근본 깨달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생 동안만이라도 매순간 상품상생하고 극락왕생함으로써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의 세계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심리적 요인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마음공부를 통해 매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롭게 좋은날이이 되길 바란다. 

축생 애욕에 가득찬 상태  프로이드
지옥 피해망상, 공격성, 불안 그외
분석심리학자
아귀 탐욕, 이기심  
아수라 경쟁, 질투심  
인간 자아도취, 자기중심적 사고 자아의식 발견
천상 자아초월의 절정의 체험 칼로저스,
매슬로우

 

축생 굶주림과 성욕의 만족
억압은 더 강해져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

성욕과 무지의 상태
분노는 애정이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이 좌절되었을때
질투심으로 일어남



사고하는능력
사색
성욕구도 한순간 일어났다 사라짐
사색과 명상
지옥 외부에서 온 공격, 공포라고 여김
공격은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좌절될때 일어나고
공격은 다시 불안과 공포심을 초래함

상대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낸 고통과 좌절의 상태

심술, 잘난척,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표현
억압하거나 감추기 때문에 불안감이 유발됨

좌절 - 질투 - 분노 - 공포심
거울
(청정한 불꽃)
을 들고 있음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할때 벗어남

인정과 사랑의 욕망과 집착의 해결

내면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냥 흘러 보냄으로 욕망과 집착에서 해방

왜곡없이 바라볼때 고통을 유발하는
근본원인에 대한 통찰력과 해결이
가장 올바르다
아귀 채울 수 없는 욕망, 습관화 되기 쉬움
불만족

애정과 관심의 구분이 어려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사발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집착하지 않음
근본뿌리 제거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
아수라 경쟁, 싸우고 질투, 파괴적인 질투심
타인 공격 파괴하는 행위, 질투하여 공격
나에 집착하여 혼란과 갈등이 휩싸인 상태

아상이 강한 상대에게
자신도 동일한 인격의 주체임을 호소하면
화를 내고 공격당함
불을
내뿜는 칼
고통이 소재가 됨 
아상을 버리기
선과 악이 돌이 아닌 동시이면서
공가 색이 둘이 아닌 하나
인간 자기를 찾는 여행
아상과 자기를 숨기려는 경향성
다양한 상태에 있어봐야 진실한 상태가 무엇인지 안다
알지 못하면 자기통제 기회 조차 상실됨

자신의 모습을 감춤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존재하지 않고 일방적인 대화
있는 자신의 모습을 수용받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적 결핌과 삶의 불안감을 떠안고 산다

자신의 참모습을 읽어버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인간
  나를 모른다는 고백
나는 공하다
천상 아상을 잘 자르셔 길들이고 화합하고 조화로운 마음
상태로 변화된 상태가 극락
비파 연주  

 

서양의 심리치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방법으로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은 알지 못함. 원인만 알았을 뿐 무지를 극복하고 지혜에 도달하여 고통으로 벗어나는 방법은 제시하지 못함. 

 

277쪽 (고성제)

생노병사의 4고와, 원증회고, 애별리고, 구부득고, 오온성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고 사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생기는 고통인 구부득고(求不得苦),

집착을 가진다면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오온성고(五蘊盛苦)

중생들의 자아도취증(나르시즘:자기중심적이고 완벽주의로 자신에 대한 착각과 망상)을 보셨기 때문에 그것을 건드리면 분노와 공격성이 드러난다. 고성제는 우리 안에 뿌리깊은 자아도취증을 건드리게 된다. 고성제는 잣니에게 창피과 굴욕감을 가져다 준다.우리의 실상은 차별적인 아상과는 달리 차별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굴욕감과 창피함을 일으키지 않는다. 일단 실존의 고통을 인정하고 나면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인 아상임을 입증하리 귀해서 헐떡거렸던 그 마음을 쉴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는 피하고 싶은 자아의 실상을 피하지 말고 인정하는 것을 강조하는것이 고성제이다.  존재를 인정하고 적응하기 보나 우울증을 선택한다. 타인의 능력이나 성공이나 행운을 인정하기보다 질투심을 선택한다.고성제는 고통자체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자아 그 자체가 고통인을 인정하것을 요구한다

 

281쪽(집성제)갈망은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구분한다.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망은 정신분석적 표현을 빌리자면 자아도취적 갈망, 자아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추구하는 욕구이다. 영아기는 울음으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게 되니 자아도취적 갈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을 실망과 좌절을 통해서 경험한다. 울거나 떼쓰는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인식하면서 현실원리를 터득해 간다. 비교적 건강한 부모 밑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일수록 자기 중심적인 유아기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기가 속한 사회에 효과적으로 적응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일 수록 자기가 원하는 것은 원하는 시기에 얻지 못하면 억압, 좌절, 분노, 현실부정등으로 병의 근원을 만든다. 전능한 유아기적 자아의 이미지가 손상될때마다 자아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과대망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를 테면 자동차를 자기의 자존심과 동일시하는 남자가 자기보다 고급승용차를 몰고 가는 여자를 보면 그 여자는 술집에 나가거나 돈많은 사람의 첩일 것이라고 업신여긴다. 자기비하가 상대방에 대한 비하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 고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절대적 객관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급차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자신의 자아를 고급 승용차를 탄 여자의 자아와 비교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무의식적 자기 비하와 과대망상적 반응은 차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이다. 

 

불교는 쾌락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쾌락을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대상으로 집착하거나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은 무상하기 때문에 집착하면 할수록 무의식적 불안만 가중될 뿐이다. 나아가서 불안이 가중되면 자연히 자아를 왜곡하여 과장하거나 축소시킴으로써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술마시고 여자생각이 나고 색욕을 채워지고, 담배를 펴고 그리고 푹 잠들고 깨고나면 다시 갈망이 반복될 뿐 감각을 통한 만족은 끝이 없다

 

285쪽(멸성제)고에 대한 인식과 인정(자아 그 자체가 고이다), 고의 원인과 집착이 갈망과 무지(자아가 공인것을 모른다)불교는 마음의 무한한 자유를 통해서 갈망이 소거되고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인간 고통으로부터 궁극적인 해방을 이룩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고차원적인 욕구로 치환하여 승화시킬수 있다는 입장이다. 불교의 식의 변용은 자아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마음의 본 성품 자아의 진정한 모습을 체험함으로써 대원경지(완전한 거울처럼 존재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지혜)로 전환되는 것을 깨달음으로 한다. 그러므로 식의 변용은 자기 존재의 본래 모습을 깨달음으로써 욕망으로 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승화는 자기 본능을 사회가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형태로의 전환된 분출을 의미한다.

 

불교는 대부분의 고통과 갈등을 2가지로 구분한다.첫째는 나 자신이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 둘쨰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불교는 자신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법으로 명상을 제시한다. 명상훈련을 통해 자아와 사물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깨달음으로 써 인간의 유아적 자기도취적 갈망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멸성제는 확신. 믿음을 주는 것일까?

 

290쪽 도성제(중도)

지나치치 말자는 말이다. 정견은 모든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사물의 실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꿰뚤어 보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의 욕망에 아무런 직접적인 시도를 보이지 않는다. 불교는 인간의 욕망자체에 아무런 좋고 나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무지를 밝히는 일에 전념함으로써 욕망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유도한다. 왜냐하면 욕망 또한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에 욕망 자체를 뿌리 뽑으려는 시도는 마치 그림자를 붙잡고 씨름하는 것과 같이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