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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역사 기록>

 

인도의 관점은 공간성이 의미가 있지 시간성에는 없다. 그래서 붓다의 설법에서도 어느 때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운집한 군중과 공간적 묘사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경전을 읽다보면 상상의 한계에 부딪혀 상상을 포기하고 문자적인 이해로 치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그것이 상상이 된다는 점이 중국 문화권의 우리와 다르다. 그리하여 인도는 역사적 기록 시간적 기록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는 추후 붓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뒷받침 된다. 오늘날 붓다의 연대를 잡는 기준은 아소카왕이다. 아소카왕과 로마와의 외교 관련 문헌에서 찾는 것이다. 19세기 까지 유럽에서는 붓다를 태양의 신 정도로 여겼다. 그 이유는 일생이 너무 위대했고, 고고학적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룸비니 유적이 1895년에 밝혀지면서 붓다의 실존이 밝혀지게 되고, 그 근거는 현장이 담긴 대당서역기였다. 현장은 중국인답게 모든 유적을 정확하게 기록해놨다. 이 때문에 하나의 유적이 발견되자 나머지 유적들도 실타래처럼 세상에 나오게 된다. 중국과 인도의 문화의 차이는 역사와 반역사 역사와 초월의 관점적 차이이다. 

 

<중국의 역사 기록>

 

중국은 역사의 나라이지만 신뢰도에는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그렇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동물이다. 특정 한사람의 진술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역사는 의도적인 합목적의 도구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앞선 왕조의 문제점을 부각해서 새로운 왕조의 당위성을 천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 왜곡은 필연적이다. 불교도 중국의 역사주의를 거치면서 변형하게 된다. 먼저 중국 전통의 상고주의는 붓다의 연대를 3000년 전으로 끌어올린다. 고대이상사회를 상정하는 가치이면서 오랜 전통을 높이는 것이다. 도교는 붓다를 노자가 서쪽으로 가서 변신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를 불교는 붓다의 연대를 노자보다 끌여올려 극복해 버린다. 그 다음 중국의 족보주의 관점을 불교에 접목시킨다. 학맥, 법맥을 만드는 것이다. 천태종의 금구상승설, 선종의 전등서러, 밀교의 혈맥보가 그렇다. 중국 역사의 시간주의와 가족문화의 영향이 학통적인 학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불교의 출가 집단은 혈연이 아닌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나이 순서도 고르지 않고 구분이 어려워서 항렬에 돌림자를 쓰는 문화가 만들어 진다. 이것이 일반족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은 시간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의 순서로 정리하고 그 속에 핵심 경전을 찾고자 한다. 교판은 불교를 시간적으로 정리하고 의미에 비중을 두어 인도 불교에 대한 중국 불교의 정리인 것이다. 이러한 교판은 두 문화권이 각기 다른 잣대의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 혼란이다. 문화상대주의 영역에서는 답이 아니라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섣불리 정답을 찾는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닌 종교의 영역이며 믿음에 의한 선택이 된다.

 

<이원론과 일원론>

 

인도에서 유럽까지 아리안족의 사고는 참과 거짓 두개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참의 세계를 피안, 열반이라고 하고, 거짓세계를 차안 고통의 세계라고 한다. 인도인들은 이상이 해탈과 열반이며 그 목적의 수단이 출가인것이다. 명상을 통해 피안에 속할 수 있다. 이럴 때 신통이 생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다 신통이 필수적이다. 선정의 세계는 사후 천상의 세계와 통하게 된다. 선정이 천상세계와 통한다는 것은 불교 우주론에서 사선이 곧 색계 28천에 해당하고, 사정이 무색계 사처에 상응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종교와 세속적이 정치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이것이 제정분리의 이중구조체계이다. 그러므로 붓다 당시 승단은 국번으로 부터 예외적인 측면을 부가 받았다. 종교법과 세속법이 양분되고 성인과 군주는 서로 다른 체계에서 다른 관점을 두고 관장했던 것이다.

 

이원론의 세계을 잇는 것 현실에서 이상을 반영하는 것을 플라톤은 수라고 생각했다. 또한 불안전한 사회를 변화하고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사회의 발전이라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불교는 세계가 고통이라는 전제의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이건 인도문화권에서는 설명이 필요없는 관점이다. 하지만 일원론의 중국 문화에서는 아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일론원에서는 세상은 긍정적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정의 대상이 되어야 출가하고 이상을 찾는다는 개념이 형성되는데 이 대전제가 수용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중국 불교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원론의 관점은 사후 세계가 없다. 유교에서도 귀신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음식을 챙겨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세관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강한 역사주의를 파생하게 된다. 이러한 중국 문화권과 역사주의는 내세관의 부재라는 상호 표리 고나계를 이루고 있다. 일원론은 제정일치를 보입게 된다. 통치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왼다. 그러니 종교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통치권자인 동시에 종교적인 수장이 된다. 긜고 중국 문화권 종교에서는 호국화같은 양상이 생기게 되는것이다. 실제로 불교 역사에서는 국가 권력에 의한 불교의 대대적인 탄압이 4차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삼무일종의 법난이라고 한다. 당나라 같은 불교 전성기에도 이루어졌다고 보아 군주권과 종교권이 수직 관계임을 보여 주게 된다. 

 

<일상의 꺠달음>

 

일원론은 신통이 없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국문화권의 수행자들은 신통은 없다. 중국은 고도의 숙련을 통한 기예에 속한 것이다. 축지법을 써도 공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장품을 써도 염력을 못쓴다는 말이다. 이 세계외에 다른 세계가 없다는 것은 꺠달음에서도 나타난다. 중국문화권의 꺠달음은 세계 밖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결국 깨달음은 일상의 재발견으로 귀착된다. 마치 등산을 하고 정상을 간다음 내려오는 것과 같다. 인식론적 관점엠서는 문제만 존재하지 삶의 문제는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이이다. 여기에서 관점 문제는 이후 돈오가 되고, 일상의 재발견은 선종의 평상심시도와 같은 일상다반사로 나타나게 된다. 중국은 자연속에 인간이라는 개념이 발달하고 자연 자체를 이상화하게 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 노자와 장자와 같은 철학 체계가 존재하게 된다. 

 

<정치의 비대와 출세의 열망>

 

일원론에서는 정치의 비중이 커진다. 그 때문에 강한 정치 지향적 문화가 연출되게 된다. 모든 가치가 정치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정치권력의 요청이 있으면 쉽게 정리로 넘어가는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정치로 인한 권력의 집중은 견제 세력의 부재때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정치 권력이 종교까지 겸하게 되면 윤리 의식에도 문제가 생긴다. 권력자는 어떠한 행위를 하여도 제재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종교도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배 이념의 불교가 성리학으로 바뀌었어도 크게 반발되지 않았던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정치 권력이 종교보다 힘이 쎄다는 증거이다.  또한 내세관이 약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 지향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 유교적인 가족주의가 결합하게 되면 학연, 지연, 혈연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일원론은 물질주의가 된다. 이원론에서는 정신이 상위 개념이 되지만 일원론에서는 정신은 육체와 결부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차별,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되고, 금전 권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는 유교의 교육열과 자본주의가 고성장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종교적인 관심이 줄어들게 되어 종교는 착한일하라는 식으로 단순한 발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종교간 차이를 알려고 하는 사람을 통이 작은 사람으로 치부하게 된다. 종교가 외연을 넓히는 수단, 사교 모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중국 문화권에서는 개개인이 다종교적인 속성을 가진다. 종교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교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간의 종교가 다양해도 종교 갈등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무종교와도 일맥상통된다. 물질적인 부분은 강하지만 윤리성이 약하다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