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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뿐만 아니라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집중과 명상훈련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다. 일부 중교집단의 사람들은 명상이 사람을 수동적이고 부정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명상이 마음의 독창력을 빼앗아갈 뿐만 아니라 모호하고 부적응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심지어 명상이라는 이름 조차 두려워하낟. 그들은 틀림없이 사회적 봉사나 박애주의적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것이 낫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특이한 방법으로 명상훈련에 대해 비판적이고 적대적이다.
흔히 서양문화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소위 동양적인 참선이나 명상훈련은 그들로 하여금 공상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함축된 의미는 그들은 공격적이고 역동적이며 지적이라서 묵상하는 습관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야적인 마음은 오직 관찰하고 실험하는 과학적 방법에만 맞고, 다시 말해서 서양 사람들은 객관적인 감각으로 객관적인 세계를 연구하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융은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하고 있는 집중, 명상훈련(참선)의 효과를 인식했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서양적인 사고유형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서양사람들은 서양적인 풍토에 맞는 기법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느낀 것 같다. 그러나 융의 그러한 견해는 오늘날 많은 서양인들의 실제적 체험을 통해서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데레사 성인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나에게 명상에 관해서 묻는다면 나는 여러분을 지도할 수 있으며 심지어 덕성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든지 명상훈련을 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왜냐하면 명상훈련은 모든 덕성을 얻을 수 있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크리스찬에게 이 훈련은 아주 중요하다.
데레사 성인과 이그나티우스 성인등은 묵상 집중 명상 훈련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끊임없이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의 훈련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그들의 훈련체계와 불교나 힌두교에서 가르치는 체계사이에는 아무런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가 발견하는 차이는 동양적인 마음과 서양적인 마음의 차이라기 보다는 신앙적인 사고방식과 지적인 사고유현의 차이다. 그러한 차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집단 내에서도 발견되며 뒷장에서 보겠지만 초의식적 경험에도 다양한 정신 유형이 있다.
비종교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명상훈련을 경시하는데 그들은 명상기법과 진정한 효과에 대해서 뭔가를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일부 특수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는 하나의 신비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명상을 신비적으로 보는 경향은 서양과학의 성과와 서양과향이 실생활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이스 사상가들에 의해서 제창되고 후에 유럽인들에 의해서 적용된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법칙을 지배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주어으며 쾌락을 얻는데 성공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집중훈련에 대한 기법과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서양식의 사고와 가치에 젖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도권과 공격성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무시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동양적인 훈련이고 명상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성공을 얻지 못한다는 그릇된 생각도 있다. 한편으로는 서양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된 객관적인 연구와 물질의 번영이 서양식의 삶 뿐만 아니라 동양의 삶도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인상이다. 물론 여기서 과학의 성과와 그것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주는 실용적 가치를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적인 사고자들과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비과학적인 결론을 논박하지 않을 수 없다.
명상과 집중훈련은 동양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버나드, 이그나티우스, 테레사 성인등의 서양 종교인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고대, 중세 유럽과아시아의 유다교 신비가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메이스터 에트하르트, 토마스 캠피스, 조지 폭스, 존 웨슬리 등 기독교 지도자들도 집중과 명사의 형태를 주장했다. 어쩌면 인간이 신이나 절대 우주를 경험하는 일은 어떤 명상의 형태나 훈련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성향과 소송된 집단의 성격에 따라서 구체적인 훈련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실제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통제하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모든 개인은 어떤 종교체계를 선택하든지 자아와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아울러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을 믿는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화해야만 한다.
명상은 사람을 수동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의 역동적인 힘을 가져온다. 우주의식, 초월의식을 실현한 명상가는 얼마든지 사회복지에 참여하여 인간애를 발휘할 수 있다. 오히려 세상풍조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회봉사나 사회사업을 시작하지만 도중에 높은 이상을 상실하고 현실적인 야망이나 명성, 힘과 결탁한다. 상당수의 종교기관과 복지기관의 역사가 이를 실증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 명상훈련이나 다른 신앙적 훈련을 함께 한다면 그들의 봉사정신과 경외심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위대한 명상가이며 동시에 인류를 위해서 헌신한 훌륭한 사회봉사자로서 정통 기독교의 프란시스 성인과 정통 힌두교의 요가수행자인 비케카난다가 있다. 또 붓다와 그의 제자들은 집중훈련을 상당히 강조했드며 동시에 그들은 사회적 봉사와 자비정신으로 고대사회를 넘치게 했다. 정말로 합리적인 사상가라면 명상기법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검증없이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종교적인 가치는 그만 두고다로 명상훈련은 인간의 통합된 성격을 형성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마음의 역동적인 힘을 가져다 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명상훈련 없이는 마음의 갈등을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정신치료는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압박에서 오는 다양한 문제들을 없앨 정도로 충분한 힘과 에너지를 줄 수 없다. 서방국가들은 과학적인 성과에 힘입어서 인간의 생활에 상당한 개선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같이 복잡하고 다원화 된 산업사회에는 정서불안, 갈등, 불만족 등으로 극도의 정신장애, 신경혼란, 기능장애, 좌절이 넘치고 있다. 현대적인 교육은 과학적 발견과 그 사용에 기초를 두고 있을 뿐, 심리적 문제는 거의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윤리와 도덕, 사회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위험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보다 심각하게 모색해야 한다.
융은 자신의 개인저인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인도여행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상당한 영향과 통찰을 받았다. 후에 그는 서양사람들은 서양인들에게 맞는 명상기법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서양사람들의 마음과 동양 사람들의 마음은 다르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동양인의 마음과 서양인의 마음을 다르지 않다. 동양적마음과 서양적 마음이라는 것은 없다. 심리학 연구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행동과 반응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이다. 미움, 야망, 질투의 감정 또한 어느 한쪽의 반구에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적인 경험은 정신적 태도와 정서적 표현이 비슷하기 때문에 동양이나 서양이나 동일하다. 정신적인 성취나 실현유형의 차이는 동양에 사느냐 서양에 사느냐에 의한 차이라기 보나든 마음자체의 본질에 달려 있다.
예를 들면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신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경험은 서로 비슷하지만 추론과 지적인 마음으로 신에게 다가가는 사람의 마음은 같을 수 없다. 정신적인 쇠퇴는 동서문명에서 모두 일어나며 사람들을 다시 소생시키는 위대한 정신적인 인격자 역시 양 문명에 모두 있었다. 붓다, 노자, 크리쉬나, 라마그리쉬나 등은 동방국가들의 삶을 몇번이고 정화시켰으며 철저한 물질주의에 물든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프란시스 등은 완전히 몰락하는 서방국가들을 구제했다. 서양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론은 인간에게 어느 정도 자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생활의 안락함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내적 본질이 과학적 발견이나 성과에 의해서 변화되어 왔다든지 서양인들의 마음은 동양인의 마음에 비해서 영혼적인 실현을 얻기 위해서 명상이나 종교적 경험이 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말하지만 집중훈련은 종교적인 가치와 별개로 현대인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청난 이점이 있다. 힌두 심리학자들은 정신적 상태를 1) 극도의 불안정 2) 부분적 불안정 3) 둔함 4) 집중된 상태 5) 완전한 집중력으로 분류한다.
현대심리학자들은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극도의 불안정을 극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정신치료자뿐만 아니라 일반의사들도 환자들의 정신적인 안정의 필요성을 상당히 강조한다. 실제로 정신병원에서는 정신적인 이완훈련과 사고통제훈련을 시키고 있으며 어떤 의시들은 치통, 히스테리성 발염 두통과 같은 신체적 병을 순전히 심리적 요인과 관련 시키면서 심리치료요법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열정이나 종교적 이상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공포 콤플렉스나 심각한 정서적 갈등을 일으키는가에 관해서 일부 임상심리학자들 사이에는 하나의 의문으로 남았다. 그러나 징정한 종교적 태도는 마음에 어떠한 공포나 갈등을 일으킬 수 없다. 오히려 종교의 가치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공포와 갈등의 원인을 제거한다. 건전한 삶의 철학은 우리들로 하여금 불안정한 마음과 둔한 마음상태를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이따금씩 아침 저녁으로 몇 분간씩 명상훈련을 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삶을 안정시키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수개월이나 수년동안 꾸준하게 하는 집중훈련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만족을 가져다 준다. 정서적인 갈등이나 좌절의 원인을 단순히 아는것만으로는 마음이 안정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크게 낙담하고 혼란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훈습과정에서 최소한 부분적인 집중력이라도 성취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방법은 보다 높은 삶의 가치를 분명하게 해준다. 갈등과 좌절, 또는 다른 어려움에서 기인된 마음의 불안은 심각한 신체적 장애를 일으킨다. 어떤 사람은 집중력과 명상훈련을 통해서 정신적인 불안을 극복하고 동시에 신경계를 강화시킴으로써 신체기관에 적절하게 기능하도록 할 수 있었다. 치료적인 견지에서 볼때도 이완과 집중력의 훈련은 상당히 중요하다.
보스톤의 한 심리치료실에서는 이완훈련이 환자가 불안을 극복하고 기능적 장애를 제거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보다 높은 삶의 철학은 인간이 만족한 삶을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은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욕망, 희망, 열정들이 그 안에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떄문이다. 보다 높은 인생철학에 대한 효과적인 이해는 우리들도 하여금 비정상적인 감정과 야망을 조절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한편 이완과 집중력 훈련 역시 필수적이다. 우리는 철학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다 그것들은 실제 우리들의 삶에서 훈련, 실천을 통해서 적용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이 있어도, 아무리 훌륭한 종교적인 가르침이 있어도 우리들의 일상에서 실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무가치할 뿐이다. 집중력 훈련은 마음을 능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개인이 가진 철학을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을 안다. 모든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안다. 모든 사람들은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모든 사람들은 의심이 자신의 평화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서적 반응에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원리들을 직접적으로 적용시키는 의지력이 약하면 누구든지 그와 같은 수준낮은 정서를 극복할 수 없다. 집중력 훈련은 마음을 통일시켜주고 의지를 강화해주며 그러한 원리들을 행동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대인관계는 그만큼 원만하고 부드러우며 만족스럽게 된다. 누구든지 명상법을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정신적 지식이나 우주질서에 대한 본질적인 자각을 가질 수 없다. 개인의 정신적 상태에 따라서 사용하는 방법의 차이는 있어도 유용성 자체는 완전히 확신적이다. 초의식 경험의 장에서는 집중력과 명상의 가장 핵심적인 효과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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