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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 19(중국-위진남북조). 경전 번역, 격의불교, 교상판석, 계통 정리(도안, 구마라집, 천태지의, 현수법장)
선묘(善妙) 2025. 3. 29. 12:47<경전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불교과 중국으로 전파되는데 있어서 경전 번역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인도와 중국이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문을 한글이나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처럼 같은 문화권 안에서의 작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번역자인 구마라집은 "인도글을 한문으로 바꾸는 것은 음식을 씹어서 먹여주는 것과 같다. 영양분을 그대로일지 몰라도 맛이 다르다"고 표현하였다. 중국에 온 전도승들이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어와 한문을 배워야 헸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의 문제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승려의 출신 지역이 달랐다는 것, 그리고 도착한 지역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용어 선택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즉 출신 지역이 인도인지 중앙아시아인지에 따라 가지고 온 원전에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 그 승려가 중국 어느 지역에 정착하느냐에 따라서 언어적 문화적차이가 존재했다는 말이다. 중국은 영토가 방대하기 떄문에 지역에 따른 편차가 커서 모둔 지역이 단일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떄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 때문에 초기의 번역자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가진 역량에 따라 같은 경전이어도 각기 다르게 번역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불교가 점차 발전하면서 번역한 용어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고 번역한 용어에 대한 통일서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배경에는 과연 어떻게 번역해야 불교가 보다 효과적으로 중국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느냐는 고민이 들어 있다.
<번역의 시대 구분>
*우리나라 구역 버전은 자장율사.
<격의불교를 반대한 도안 - 1. 석씨로 통일 2. 번역체계 기준 마련 및 목록정리 3. 구마라집 초청>
도안(312~385)은 북방불교의 교단을 정비하고 불교의 안정을 꾀하는데 주력했던 인물이다. 그는 추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무척 총명했다. 12세에 출가했지만 외무에 묻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불도징(신통의 시대)의 제자가 되면서 발탁되어 비로소 크게 빛을 보기 싲가한다. 이로 인해 도안은 불도징 사후 후조의 군주였던 석호의 고문으로 초청되었으나 도안이 도착했을때는 이미 석호는 살해당하고 후조는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도안은 5호 16국(위진남북조)시대라는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 당시 아직 체계가 잡혀있찌 않던 북방불교를 정비하는데 주력한다. 먼저 도안은 모든 승려의 성을 석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앞에서 외국에서 온 승려의 경우 출신지를 성으로 썼음을 언급하였다. 이후 이들을 따라 출가하는 사람이 늘면서, 성씨의 구별은 점차 파벌을 만들게 되었고 그에 따른 폐해가 생겨났다. 이런 이유 떄문에 도안은 모든 승려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가이므로 성으로 석을 쓰자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도안은 호북성 양양에서 경전을 정리하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불교의 전래에서 부터 374년에 이르기 까지 중국으로 전해져 번역된 경전의 목록을 편찬하였다. 이 목록이 '도안록'이라고 불리는 '종리중경목록'이다. 여기에는 경전이 번역된 시기와 번역된 장소 번역자등을 밝혀 경전의 전래의 체계를 마련하였다. 이는 동시에 경전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
또 도안은 번역과 관련해서 격의 불교를 반대했다. 격의불교란 열반을 무위, 또는 진여를 본무로 번역하는 것으로 중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던 도가의 용어를 차용하여 불교를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는 당시 도가를 이해하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생소한 개념이 훨씬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고승전 권4에 의하면, 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은 4세기의 축법아였다. 그러나 이후로 격의의 전통이 중국불교에 자리 잡게 되면서 점차 개념이 왜곡되는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는 당시 사용한 용어들이 대부분 노자나 장자에서 발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격의는 불교가 중국인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정착하는데 있어서 필연적이었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유사한 개념들의 누적은 불교의 정리와 발전에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도안은 당시 중국불교의 수준이 격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격의에 대한 정리를 감행하게 되는데, 이는 이후 구마라집이 401년 장안으로 와서 대규모의 경전 번역을 하는데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도안과 구마라집은 서로 만나지는 못했으나, 도안은 번역체계를 통일안인 오실불 상불역을 제시하였고, 구마라집은 그를 바탕으로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 통일하게 되는 방대한 작업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오실불 상불역이란 인도의 암기식에서 볼 수 있는 반복적인 구절과 공간설명의 구체적인 미사어구들은 삭제하고, 핵심은 살리는 중국식 서술식으로 옮기자는 내용이 주된 골자이다.
또 도안과 관련해서는 고승전 권5에 나오는 내용이 유명하다. 그것은 전진이 군주 부견이 당시 양양을 함락하면서, "짐이 10만의 군사로 양양을 함락하고서 한 사람 반을 얻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때 부견이 얻은 한사람은 도안, 반 사람은 당시의 천재 문인이었던 습착치를 가르킨다. 이외에도 도안은 중국불교 최초로 빈두루존자 신앙의 유포자이기도 한데, 이는 오늘날 한국불교에도 전해지는 나반존자신앙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빈두라 존자 = 나반 존자 = 독성
석가모니 부처의 16나한 중 제1존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6제자 중 1명만 따로 섬기는 나반존자신앙(독성신앙, 독성기도)이 있다. 기도도량으로는 청도군 운문사 사리암과 수유동 삼성암, 해인산 희량대가 있다.우리나라에만 독성신앙이 있는 이유는 나반존자에게 기도를 올리면 성취가 빨리 이뤄진다, 영험이 매우 커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속히 영험을 받는다는 소문 때문이다. 이는 독성 기도올릴때 외우는 기도 중 "나반존자의 신통이 이 세상에 희유하여 행하고 감추고 변하기를 마음대로 한다."라는 구절에서도 파악이 된다. 또한 부처님이 너는 남아서 불법을 제대로 알려줘라 하여 바르게 고쳐 전달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나반존자는 엄격해서 목욕을 하고 공양을 갖추어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의견으로 나반존자는 불교의 것이 아니라 민족 고유 신앙이라고도 한다. 단군이 뒤에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고, 그래서 명당 뒤에는 산신을 신봉했는데, 불교가 들어 오면서 칠성도를 함께 모셨는데, 이것을 즉 나반존자를 단군의 상으로 파악했다는 주장이다.
나반존자의 생김새는 다른 나한들과 구분된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하얗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눈썹은 길어서 길게 늘어지는 경우가 많고, 머리카락은 없을 때도 있고, 머리 뒤쪽 경계선으로 흰머리카락이 하얀 줄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구역(경전 정비와 체계 통일)의 구마라집(동수)>
구마라집(344~413)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대표하는 외국승려지만 동시에 기구한 인생을 산 인물이기도 하다. 고승전 권2에 따르면, 구라마집은 구자국 공주인 어머니와 인도인 바라문 출신의 승려였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천재였다. 어머니 몸에는 붉은 사마귀가 있었는데 그 사마귀가 있으면 아주 똑똑한 아이가 탄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구마라집 전기에 보면 구마라집을 임신했을때 엄마가 똑똑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7세에 어머리를 따라서 출가한 뒤 서북인도의 카슈미르에 있던 반두달다 밑에서 설일체유부를 3년간 수확한다. 그러고는 다시금 카슈가르로 가서 1년을 머물며 대승부를 배워 대승으로 전향하게 된다. 구마라집의 명성은 379년 구자국을 방문한 승려 승순에 의해서 중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중원의 패지를 꿈꾸고 있던 전진의 왕부견은 도안의 의견을 받아들여 구마라집을 장안으로 모셔 오고자 한다. 도안이 구마라집을 장안으로 데려오길 원했던 것은 구마라집이라면 율장을 정비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단의 정비를 위해서는 율장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당시는 율장이 단편만으로 전해져서 전체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구자국이 구마라집을 내주기를 거절하자, 부견은 382년 여광을 장군으로 하여 구자국을 비롯한 서역을 정벌하게 한다. 결국 구자국은 멸망하고 구마라집은 여광에게 붙잡히게 된다. 그러나 부견은 비수의 전투에서 패하고 385년 휘하의 장군 요장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여광은 귀국을 포가히고 서북쪽의 양주 지역을 평정하여 후량을 건국한다. 이곳에서 구마라집은 장장 17년 동안 억류당하게 된다. 여광은 비불교도였으며, 구마라집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기 때문에 구마라집은 이 시기에 여러 굴욕적인 일들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구마라집은 중국어와 한문을 배우게 되고, 천재이자 귀족이라는 자만심을 꺾고 하층민의 생활과 심리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후일 구마라집의 번역이 중국인들의 심성 구조에 잘 맞는 보편성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진의 뒤를 이은 완조인 후진(384~417)의 요흥은 왕조의 안정과 문화발전을 위해서 다기슴 구마라집을 모셔오고자 한다. 그러나 여광이 거절하자, 후진은 군대르 일을켜 후량을 무너뜨리고 401년 장안으로 구마라집을 모셔오게 된다. 구마라집 때문에 두 나라가 멸망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부견은 고구려에게 불교를 전해준 사람이였고, 북진을 통일하면서 도안과 습착지를 얻었다. 그때 도안이 부견에게 구마라집을 초청하자는 건의하였다. 그 이유는 경전 정리에 있어서 원어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졌으며, 서구의 문화와 과학적인 상승, 경제적인 이유 등 여러 요인들이 있었다.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 유명했던 구마라집이기 때문이다.
추가 적인 내용을 더 적자면, 구마라집이 여광에게 붙잡혀서 수모를 당하는 17년 중에는 여광이 강제로 술을 먹여서 구라마집이 파계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구마라집은 언제나 부끄러워하면서 역경장에게 경전을 설할 때마다 청중에게 "진흙에서 연꽃이 피는데, 진흙은 보지 말고 연꽃만 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또한 “나의 번역에 오류가 없다면 내 시신을 화장한 뒤에도 혀가 타지 않을 것이다(若所傳無謬者 當使焚身之後 舌不焦爛)”라는 절대 자신감을 반영한 유언을 남겼다. 말씀대로 다비식 이후 오직 혀만이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혀사리(舌舍利)인 셈이다. 여러 지역에 많은 사리탑이 현존하지만 혀사리탑은 초당사가 유일할 것이다.
장안에 도착한 구마라집은 서명각과 소요원에 머물며 402~413년에 걸쳐 대략 35부 384권이라는 많은 경전을 번역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방대한 작업을 구마라집 혼자서 한것은 아니었다. 구마라집이 인도 경전을 중국말로 풀면, 그것을 다른사람이 받아 적어 교열 윤문하는 식의 집단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구마라집은 도안이 정비한 격의불교에 대한 비판적인 터전 위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번역을 하게 된다. 구마라집은 일생동안 총 73부 394권의 경전을 번역했는데, 그의 경전 번역과 정비는 체계를 통일시켜 진행한 최초의 경전 번역이라는점에서 중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 그래서 구라마집을 구역을 대표하는 경전 번역자로 꼽는다. 약 1000년간 이어진 중국의 경전 번역사는 이후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당나라 때의 현장을 기준으로 각각 구역과 신역으로 나눈다. 구역은 의역의 성격이 강했고, 신역은 직역을 중시하는 등 두 방식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구마라집의 문하 제재로 특출난 인물은 승조, 도생, 도융, 승예 4명인데, 이들은 라집사철이라고 한다. 구라마집 문하 4명의 철인이라는 의미이다. 이 중 승조는 중국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반야공 사상을 이해한 사람이며, 도생은 돈오설의 최초 주창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는 구마라집의 번역이 단순히 번역을 넘어서 체계적인 불교 이해와 더불어 중국화라는 관점으로 이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마라집은 반야 공사상의 핵심을 설법하였고, 그의 제자 승조는 대품반야경(공사상)을 번역을 도왔다. 이후 승조는 반야공 사상을 논서로 적은 삼론(중론, 백론, 12문)과 열반무연론을 지었다. 이 4개의 논서를 합하여 승조가 지었다고 해서 조론이라고도 한다. 승조는 원래 대필가였고, 문장가였다. 노장사상에 심취해 있다가 미진함을 느꼈는데, 유마경(대승에서 선으로 넘어가는 내용)을 읽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이후 대품반야경을 번역하면서 반야무지론을 작성하여 구마라집에게 보여주자 구마라집은 극찬을 하였고, 혜원도 이를 보고 극찬하게 된다. 반야무지론에 대한 간략한 내용은 반야는 일반 지혜와 다르나. 본질적 지혜를 말한다고 한다.
<무, 공, 허의 구분>
* 반야는 현상을 말하고, 불성은 본체를 말한다.
* 비어 있어야(허)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허의 기능을 알고 있어야 한다, 허가 있어야 존재의 기능이 작동된다.
(글과 여백의 관계, 그릇이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것과 같다)
* 삼현학에서는 귀무론과 숭유론이 있었다. 귀무론은 본질 위주, 숭유론은 그래도 현실세계는 있다는 이야기다
* 연기: 관계성이 존재,
* 중도: 최고의 적절설을 말한다.
* 연기와 중도는 : 현상적
* 공은 항상함은 없다. 실체가 없이 꿈처럼 돌아간다. 본질적으로 항상한것이 없다는 것이 공이다. 허와 다름
* 반야 무지론은 꿈이라는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된다는 귀무론과 숭유론보다 나아간 정반합의 합의 제시안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전 목록과 계통의 정리: 교상판서>
다양한 경전의 전래로 인해 혼란이 생기게 된다. 이는 목록집을 만들어 경전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지는 목록이 도안의 종리중경목록이다. 그러나 중국불교가 안정화되고 발전함에 따라 더욱 다양하고 서로 다른 관점의 경전들이 중국으로 대거 전래되면서 큰 혼란이 생기게 된다. 중국 불교에서는 경전들이 붓다의 교설이라는 하나의 퍼즐을 이루는 조각인줄 알았지만 사실을 붓다 입멸 후 발전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등 다양한 퍼즐의 조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사상가 도미나가 나카모토(1715~1746)가 1744년 출정후어를 발표해서 대승불교는 붓다가 설한 것이 아니라는 대승비불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동아시아의 불교인들 중 누구도 불교가 하나의 퍼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미나가가 이렇게 주장하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유교를 배운 유학자였던 데다가 당시 대장경을 간행하는 조판작업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불교 경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 떄문이다. 즉 불교인이 아니라 외부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불교에서는 다양한 경정을 정리, 분류해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를 교상판서, 줄여서 교판이라고 한다.
<위진남북조의 10종교판, 수의 천태지의 오시팔교와 묘법연화경, 당의 현수 법장 오교십종과 화엄경>
교상판석은 다양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을 형식이나 설한 순서, 내용의 우열 등에 따라 범주별로 분류, 종합해서 하나의 유기체적인 사상 체계를 세워 풀이하는 경전 연구 방법을 말한다. 수나라의 통일 이전에 교상판석 중 유력한 것으로는 10종이 있는데 이를 남삼북칠이라고 한다. 이는 강남의 3종, 강북의 7족이라는 의미이다. 남삼북칠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천태지의의 묘법연화경현의 권 10등에서 확인된다.
교상판석은 경전의 계통을 확립해서 핵심과 방편을 구분하기 위한 것, 즉 핵심 경전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불교 경전의 다양함과 방대함 때문에 어떤 범주들이 있고, 그 중에서도 어떤 경전이 핵심이 되느냐를 판단해 그 경전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수행하는 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천태지의가 10종 교판을 언급한 것은 이를 넘어서 자신의 교상판석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천태지의의 오시팔교이다. 오시는 붓다의 가르침을 시간 순서에 따라 분별한 것이고, 팔교는 가르침의 방식에 따라 분류한 화의사교의 4가지 가르침과 내용에 따라 분별한 화법사교의 4가지로 재차 나눠지게 된다. 천태 지의가 오시팔교로 분류한 목적은 오시 중 법화열반시와 화법사교의 원교에 묘법연화경이 배속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천태재의는 묘법연화경리아는 경전을 통해서 붓다의 일대 가르침을 일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천태지의의 교관을 따라 생기게 된 종파가 바로 천태종이다.
= 천태지의 오시 =
화엄시 | 화엄경 |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 21일 |
녹원시 | 아함경 | 녹야원에서 최초의 가르침 이후 12년 | 12년 |
반등시 | 유마경 승만경 |
대승불교의 초기 경전 | 8년 |
반야시 | 반야경 | 대승불교의 본격적인 경전 | 22년 |
법화열반시 | 열반경 | 최종 경전(법화경)과 최후의 1일(열반경) | 8년, 1일 |
= 천태지의 화의사교 =
돈교 | 화엄시 | 붓다의 꺠달음을 있는 그대로 단번에 설하는 방식 |
점교 | 반야시 | 낮은 단계에서 점진적으로 깊은 단계로 전개하는 방식 |
비밀교 | 함꼐 들어도 모두에게 완전히 다른 별개의 가르침이 전달하도록 하는 방식 - 설하는 주체에 따른 차별 조건 |
|
부정교 | 대기 설법 | 모두에게 같은 내용을 설하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르게 들어서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 - 듣는 대상에 따른 차별 조건 |
= 천태지의 화법사교 =
장교 | 소승을 위한 가르침 |
통교 | 성문, 연각, 보살 모두에게 통용되는 공통의 가르침 |
별교 | 대승의 보살만을 위한 특별한 가르침 |
원교 | 모든 것을 포함하는 두루 원만한 최고의 가르침 - 묘법연화경 |
수나라의 천태지의가 오시팔교였다면 당나라 초기에는 화업종의 개조인 두순(557~640)의 오교 교판과 이를 계승해서 발전시킨 현수법장(643~712)의 오교십종의 교판이 있다. 오교십종의 오교는 가르침의 얕음에서 점진적으로 깊은 쪽으로 가는 방식으로 분류한 것이며, 십종은 오교를 좀더 세분해서 차등을 분명히 명시한 것이다.
= 현수 법장 오교 =
소승교 | 소승불교의 수행자를 위한 가르침 | 아함경 |
대승시교 | 초기 대승불교의 가르침 | 반아경, 해심밀경 |
대승종교 | 원숙한 대승불교의 가르침 | 능가경, 대승기신론 |
돈교 | 단번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르침 | 유마경 |
원교 | 모든 것을 두루 포함하는 원만한 최고의 일승의 가르침 | 화엄경 |
= 현수 법장 오교 십종 =
아법구유종 | 인식의 주체과 객체가 도무 실체가 있다는 관점 | 독자부등 | 소승교: 아함경 |
법유아무종 | 인식 객체는 불변하는 실체가 있지만 인식 주체는 없다는 관점 | 설일체유부 | |
법무거래종 | 현재에만 불변하는 실체가 존재하고 과거와 미래는 없다는 관점 | 대중부등 | |
현통가실종 | 과거, 미래는 없고, 현재에는 있기도 없기도 하다는 관점 | 설가부, 성실론 등 |
|
속망진실종 | 세상의 현상은 허망하지만 꺠달음의 진리는 참되다는 관점 | 설출세부 | |
제법단명종 | 모든 인식 대상은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 | 일설부 | |
일체개공종 |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공이라는 관점 | 반야공 | 대승시교: 반야경, 해심밀경 |
진적불공종 | 근원적인 본질은 공일 수 없다는 관점 | 대승기신론 여래장, 불성사상 |
대승종교: 능가경, 대승기신론 |
상상구절종 | 모든 것이 끊어진 경계가 궁극적인 진리라는 관점 | 돈교: 유마경 | |
원명구덕종 | 모든 개별적인 것은 그 자체로 일체를 갖춘 더할 수 없는 완전체의 관점 | 원교: 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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