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교단의 확대와 율의 제정>
불교 교단이 확대 됨에 따라 교단을 통제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계율이다. 당시 인도의 수행집단에서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처럼 국가권력으로 부터 독립되어 있었기에 이와 같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이 개입될 수 없도록 집단의 원칙이 필요하게 된다.
율장에 따르면 불교 승단에서 계율이 생긴 것은 붓다가 깨달음을 증득하고 5~7년 뒤라고 되어 있다. 불교 교단 초기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교단이 확대 되면서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율장은 국가의 헌법처럼 한번에 완비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추가되는 방식으로 제정되었다. 이를 수범수제라고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마다 율을 제정하다 보니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율을 위반되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의 법의 불소급의 원칙가 동일한다. 또한, 정신 착란 상태에서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을 두는 등 매우 합리적인 관점에서 정리되어 있다.
*불소급의 원칙: 법은 그 시행 이후에 성립하는 사실에 대하여만 효력을 발하고,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는 소급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
<율의 목적와 발전>
율은 불교 교단에서 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모든 승려는 기본적으로 율 조항을 암기해야 한다. 율조항을 기억하기 위해서 한 달에 두번(보름, 그믐)에 율 조항을 집단으로 암송하여 문제점을 반성하는 포살의식이 개최되었다. 율이란 승려들에게 부과되는 종교법의 속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사회법처럼 징벌을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알기 위한 계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것이 율의 목적이지만, 교단 구성원의 공통된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까닭에 문제가 발생하였을때는 징벌이 적용되기도 하였다.
율을 모아 기록한 율장은 '남북전육부율'이라고 하여 크게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로 전해진 6종이 현존하고 있다. 그 6종은 빨리율, 사분율, 오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유부율로 빨리율을 제외한 5종은 한역되어 북방불교에 전해진 율장이다.
율장은 경전에 비해 더 다양하고 치밀하게 정리된다. 그 이유는 불교의 확대와 더불어 지역적이고 문화적인 특성들이 반영되면서 발전되었기 때문인다. 또한 조항이 분명하지 못한 경우는 문제가 오히려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용인되는 불교 교단과 10대 제자>
율장이 전체적인 틀을 갖추기 위한 규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출가의 목적은 깨달음이라는 수행의 완성에 있다. 이와 관련되어 주목되는 것이 다양한 교육방법을 용인했다는 것이다.
잡아함 권 16 '행경'이나 증일아함 권 46 '목우품'등에는 붓다의 제자들이 사리불과 목건련과 같은 제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그룹을 만들어 수행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즉 지혜수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사리불을 따르고, 신통 수행을 선호하는 이들은 목건련을 따르는 구조인 것이다. 대제자들은 많게는 500명의 제자들을 인도하는 대규모 집단의 리더였다.
불교 교단안에서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거대한 불교 교단 전체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통일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둘째, 사문의 수행 문화는 주기적으로 이동하는것이 일반적이였으며, 그 관리를 대제자들이 하게 된다. 셋째, 각자의 성향에 따라 그룹이 달리할 수 있도록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효율성을 증대 시켰다.는 점이다.
붓다가 중도주의에 입각한 유연성은 다소 산만하게 인식될 수 있는 다양성을 용인하고 발전시킨다. 이후 불교가 그 어떤 종교들 보다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유연하게 전개 되는 요인으로 작용된다.
10대 제자에 관한 이야기는 증일아함 권3 '제자품'과 '비구니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특기 | 제자 |
지혜 (육사외도에 속한 산자야의 제자, 반야심경에 언급) |
사리불 |
신통 (육사외도 산자야의 제자, 붓다보다 먼저 입멸, 날아다님 신통으로 지옥을 보게되어 어머니의 구제 방법을 물음) |
목건련 |
두타 (고요한 곳에서 수행, 걸식, 헌옷, 애욕과 의식주의 집착버림) |
마하가섭 |
해공 (공에 대한 설법을 잘함, 금강경(공)에 자주 언급 코살라국 출신, 급고독장자는 수보리의 큰아버지) |
수보리 |
설법 (자세히 설법하여 뜻과 이치를 분별하게 함) |
부루나 |
논의 (선을 분별하고 도를 펴서 가르침) |
가전연 |
천안 (붓다의 꾸지람을 듣고 눈을 잃었으나 지혜의 눈이 생김 붓다의 친족) |
아나율 |
지계 (이발사 출신, 수드라 노예계급 출신, 평등 상징) |
우바리 |
밀행 (붓다의 아들, 사리불의 제자) |
라후라 |
다문 (때를 알고 사물에 밝아 어디가나 의심이 없고 잘 기억하고 어른을 잘 받들어 모심, 석가 친족) |
아난 |
10대 제자에 대한 수식은 이후 대승불교의 보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대지 문수보살, 대행 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 자씨 미륵보살등 보살 명호 앞에 특정 수식이 따르게 된다. 10대 제자들은 모두 붓다의 직제자가 아니다. 라후나는 사리불의 제자이고, 아난은 다섯비구 중 십력가섭의 제자이다. 10대 제자에는 붓다의 손제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누구의 제자이기 보다는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으로 보아진다.
<북제개혁과 중도의 유연함의 예>
붓다는 중도주의를 내세웠기에 상황에 따른 적절성을 원칙을 세웠다. 그렇기에 사회적 변화 요구에 능동적으로 반응을 보여야 한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점했던 불교는 사회적인 변화와 요구에 보다 민감하였다. 이는 붓다가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실제로 전 세계의 성인들 중에 교조 당대에서 평화적으로 성공한 예는 붓다가 유일한다. 이는 사회적 변화에 맞춰서 대응하면서 사회를 계몽으로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복제 개혁이다. 비구들은 사람들이 버린 천을 모아 기워만든 분소의를 입었다. 하지만 여러천을 모아 깁다 보니 색이 얼룩덜룩하였다. 이를 황토로 염색해서 입었다. 그래서 승려의 법의는 카사야(가사) 다른 번역으로는 괴색(색을 무너뜨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도시가 발전하면서 생활 환경이 좋아진 도시인은 보다 깔끔한 복장을 원하였고, 사분율 권 39 의건도에 보면 버려진 천을 구하는 비구를 위하여 왕비와 왕족들이 좋은 천을 일부러 조각내어 길가에 버렸다는 내용이 있다.
붓다는 이런 사회적 요구를 간파하고 깨끗한 천을 재단하고 봉재하여 인위적으로 누더기를 만든 뒤 황토로 염색해서 입는 복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분소의의 정신과 황토로 색을 무너트리는 가사의 전통은 유지한채 훨씬 세련되고 깔끔한 복장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승려들이 착용하는 가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사회적으로 열린 관점에서 변화를 수용한 측면은 당시 불교가 신흥 종교이면서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승려들이 일반인들과 대면해야 할 때는 승가리를 착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승가리는 현대의 장삼이나 두루마기와 같은 외투로 승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회의등에 참석 할때는 입지 않아도 되었지만 승단 밖에 나갈때는 신경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내면의 수행력과 덕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1차적으로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붓다는 바로 이부분을 주목한 것이다. 단정함을 통해서 보는 이로 부터 믿음을 증장시키고, 믿지 않는 마음을 돌이켜 믿음을 주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와 같은 붓다의 관점은 제계십리 등에 나타났다.
재계십리는 승단의 계율을 제정하는 목적 10가지를 말한다.
1. 승가의 결속력을 위해
2. 승가의 품위 유지를 위해
3. 선한 비구가 안주하도록 하기 위해
4. 악인을 제거 하기 위해
5. 선한 비구가 안주하도록 하기 위해
6. 현세의 번뇌를 금하기 위해
7. 미래세의 번뇌를 끊기 위해
8. 아직 믿지 않는자를 믿게 하기 위해
9. 이미 믿고 있는 자의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해
10. 정법의 구주를 위해
의복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들어 있다. 자이나교는 철저히 무소유를 주장하면서 옷을 입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나체주의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붓다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의복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의 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면접, 결혼식, 장례식 등 중요한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입는 옷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의복에는 예의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무소유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에 집중하였다. 이것이 당시 타 종교의 운영방식과 다른 불교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언급하지만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계몽하며 나아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열린 자세는 진정으로 강한 사람의 태도이며, 이것이 붓다의 유연성 중도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아난의 간청으로 여성 성직자를 허용한 불교>
모든 종교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주관적인 지표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해도 우열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불교의 장점을 꼽는다면 그것은 여성의 성직자를 인정한 것이다. 미국역사에서 흑인을 인정한것은 1870년대 이지만 여성을 인정한 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부여되었다. 하지만 불교는 그 시절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고 출가를 허용하였다. 아직까지 여성을 성직자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불교는 참으로 선구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럼 그 시절 인도에서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을까? 인도의 최초법전인 '마누법전'을 보면 여성을 죽인 죄는 살인죄가 아닌 도둑질과 같은 형량으로 다스린다는 조항이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함을 잘 나타내는 구절이다.
그럼 불교는 어떻게 여성을 성직자로 인정하게 되었을까? 여기에서는 붓다의 아버지 정반왕의 사망과 연관되어 있다. 붓다의 이복동생 난타와 붓다의 아들 라후라가 출가하고 정방왕이 사망하게 되면서 붓다의 직계에는 남성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붓다의 이모와 양모인 대애도가 붓다에게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 시절 인도에서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가정은 독립가구로 인정하지 않는 법 조항이 있었다. 또한 여성은 지위가 낮아 출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기실현의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아진다. 대애도의 출가 요구는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진 여성 500명이 동조하는 상황으로 커지게 된다. 붓다는 이들의 요청을 계속 거절하였지만, 대애도를 비롯한 석가족과 콜리족 여성(마햐부인과 석가의 부인의 나라)들은 비구와 같은 복색을 하고 나타나 바이샬리까지 붓다를 쫓아와 애원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이 붓다의 시자인 아난이다. 아난의 간곡한 간청이 더해져 붓다는 결국 비구니가 비구에게 지켜야 할 8가지 법(팔경계)를 수용하는 선에서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게 된다. 여성의 출가를 허용한 것은 붓다가 깨달음을 증득한 20년 뒤의 일이다. 그러니 비구니 승단은 비구 승단에 비해 늦게 만들어 졌으며, 사부대중이라는 말또한 상대적으로 늦게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거부한 것은 당시 여성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불교가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실제로 여성 출가는 이후 사회적인 질타를 받게 된다. 이로 이해서 비구니가 지켜야 할 조항들이 384가지로 늘어나게 되었고, 사분율에는 384가지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사회적 물의, 비판이 있을 때마다 이를 보완하는 계율이 여성 출가자들에게 더 부가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여성의 출가는 사회적인 비판과 더불어 교단안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귀족 출신의 엄격주의자들은 이를 쉽게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하가섭이다. 그를 수식하는 말이 두타인데, 두타라는 뜻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엄격한 수행을 한다는 뜻을 말한다. 그런 마하가섭의 관점에서는 여성 출가를 용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율장에는 마하가섭이 비구니들을 꾸짖는 대목이 있고, 1차 결집시에는 여성 출가를 간청하는 일을 문제 삼아 아난에게 참회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여성의 출가는 불교 교단안에서도 완전한 수용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는것으로 볼 수 있다.
<팔경계>
1. 백세의 비구니라도 새로 비구계를 받은 비구에게 먼저 절해야 한다.
2. 비구니는 비구를 흉보거나 꾸지람을 해서는 안된다.
3.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말해서는 안된다.
4. 비구니는 비구를 따라서 구족계를 바당야 한다.
5. 비구니는 허물이 있다면 비구에게 참회해야 한다.
6. 비구니는 15일마다 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7.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안거할 수 없다.
8. 하안거를 마치면 비구 가운데 자자할 스님을 찾아야 한다.
*자자(自恣): 하안거(夏安居)를 마칠 때 하는 행사.
같이 안거에 들었던 승려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승려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한다.
팔경계는 비구와 비구니간의 불평등 조항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당시 여성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이것은 불평등 조항이 아닌 배려를 위한 조항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팔경계의 내용은 붓다의 견해가 아니라 비구가 주도하는 교단의 의해 마하가섭과 같은 장로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여성 출가를 허용하는 전제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견해는 타당성이 약하다. 또한, 붓다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문제를 아난의 간청으로 되돌렸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여성 출가 문제는 붓다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고, 붓다의 의지를 파악한 후 아난이 구체적으로 추진했다고 이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아진다.
<중도주의의 오해>
중도주의에 입각한 붓다의 유연성은 불교 교단의 확대와 더불어 엄격주의로 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유연성은 자칫하면 엄격주의자들에게는 나태한 자기합리화로 비춰지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사문 전통에서 고행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붓다 역시 고행에 집중했다는 점을 본다면 그런 생각은 이해가 된다.
붓다가 만년에 이르면 불교는 인도 내 여러 나라에 걸치게 되면서 거대한 교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각국의 불교는 민족과 문화 배경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당시 교통과 통신의 한계가 있던지라 더욱 더 그 차이가 분명했을 것으로 보아진다. 이 상황에서 붓다는 현실을 반영한 교단 운영은 이해가 부족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존재하기 된다. 이과 같은 문제를 배경으로 제바달다가 붓다에게 엄격주의를 따르자고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오법 | 주장의 배경 | 설명 |
언제나 분소의만 착용할 것 |
복제 개혁의 반대 | |
걸식만 할 것 | 공양청에 대한 반대 | 신도의 초청으로 신도의 집에가서 음식을 먹는 것 |
유제품 섭취 금지 | 송아지가 먹을 것을 뺏어 먹는 것이다 |
유목문화를 배경으로 유제품 섭취 일반적 |
육식과 생선 섭취 금지 |
삼정육 허용의 반대 | 삼정육은 깨끗한 고기를 뜻한다. 1. 자신의 눈으로 도살하는 장면을 보지 않는 것 2. 나를 위해 도살하지 않는 고기 3. 나를 위해 도살했다는 의심이 없는 고기 즉 동물의 죽음이 승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은 섭취 가능 |
평생 나무아래와 길 위에서만 생활 |
사찰에서 수행하는것은 수행자 답지 못함 |
제바달다는 붓다의 사촌동생이나 아난의 친형이다. 지능은 아난에 필적하고 신통력은 목건련에 버금갔다고 하였다. 이러한 탁월한 능력이 엄격주의와 만나면서 제바달다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매몰된다. 제바달다는 5법을 주장하였다. 붓다 역시 제바달다의 노력하는 수행자의 정당한 모습을 칭찬했고, 제바달다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제바달다가 주장한 오법을 불교 교단의 전체 통규로 정하여 모든 승려가 지켜야 한다는 규칙으로 삼은것이 한계이다. 중도를 말한 붓다의 관점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제바달다의 요구에 그것을 원하는 사람을 그렇게 해도 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마다 다른 부분이 있으니 일률적인 적용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붓다는 만년에 노년의 마하가섭에게 여려겹으로 기운 누더기옷은 무거우니 가벼운 할절의를 입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두타행을 선호하는 엄격주의자였던 마하가섭은 무거워도 누더기 옷이 더 좋다고 하면서 붓다의 조언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연로한 제자를 아끼는 붓다의 마음과 신념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마하가섭의 모습이 잘 나타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개인의 선택을 바탕으로 수행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것이 불교 교단의 특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제바달다의 엄격주의를 붓다는 거부하게 된다.
결국 제바달다는 자신의 엄격주의를 지지하는 무리들과 불교의 한 분파를 형성하게 된다. 이 엄격주의는 천년이 넘도록 인도에 잔존하게 되는데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10, 법현의 불국기, 의정의 남해귀기내법전에서 단편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필사 > 불교사(자현 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사 6(인도). 부파 불교- 1 부파 불교의 시작과 불교의 진흥 (6) | 2025.03.07 |
---|---|
불교사 5(인도). 붓다의 생애와 불교 4 - 붓다의 열반과 1차 결집 (2) | 2025.03.07 |
불교사 3(인도). 붓다의 생애와 불교 2- 가르침의 전개와 교단의 형성 (3) | 2025.03.07 |
불교사 2(인도). 붓다의 생애와 불교 1- 붓다의 탄생과 깨달음 (1) | 2025.03.07 |
불교사 1(인도). 불교의 여명(붓다의 탄생 이전) (2) | 2025.03.07 |
- Total
- Today
- Yesterday
- 정본수릉엄경 2
- 비밀신주 #ai음원 #불교bgm #ai불교음원비밀신주 #ai음원 #불교bgm #ai불교음원
- 유가심인 #태백산개다나리 #비밀신주 #능엄주 #ai불교 #ai불교음원 #불교bgm #ai음원
- 비밀신주 #ai음원 #불교bgm #ai불교음원
- 1
- 인더스문명의 발생과 끝 #베다의 집대성과 브라만교 탄생 #우파니샤드의 성립과 브라만교의 한계 #도시국가의 발달과 아리안족 문화의약화 #신흥사문의 탄생과 발전 #윤회와 해탈에 대한 관점
- 태백산개다라니 #비밀신주 #ai음원 #불교bgm #ai불교음원
- 태백산개다나리 #능엄주항마분 #비밀신주 #ai음원 #불교bgm #ai불교음원비밀신주
- 벡산개다나리어쿠스틱 #능엄주비밀신주 #능엄주 #능엄주범어 #ai음원 #불교bgm #ai불교음원 #비밀신주트롯 #트롯버전 #태백산개다나리
- 능엄주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