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의 탄생>
중국은 동아시아 국가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했다. 중국에서 남성주의가 생기게 된 배경에는 유교가 큰역할을 했었다. 주역 계사전에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비천하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때 하늘은 땅과 보통 남성과 여성으로 대치된다. 논어에서도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구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는 여성황제가 존재하는데, 그 인물이 바로 측천무후로 알려져 있는 성신황제이다. 측천무후는 본래 637년 당 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하였다. 그러나 649년 당 태종이 사망하자, 후궁들은 모두 감업사로 출가하여 선황의 명복을 빌게 된다. 이후 당 고종의 눈에 띈 측천무후는 651년 고종의 후궁으로 다시금 황궁으로 들어가 655년 고종의 황후가 된다. 당 고종에게는 발ㅈ가한 경우 운신을 어렵게 하는 지병이 있었기 때문에 664년 부터 영민한 측천무후에게 많의 의존했다. 그러므로 644년이후 부터 고정이 승하한 683년까지 고종의 업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실제로는 측천무후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 태종의 정관의 치(627~649)로 대변되는 번성기를 이어 당의 안정을 확립한 인물은 측번무후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측천무후는 이후 주나라(690~705)를 개국해 스스로 황제가 되 었다. 이때를 중국 고대 왕국 주나라와 구분하여 무측천의 주나나라는 의미의 무주라고 한다. 이 시기 동아시아는 여권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신라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라는 여성 군주의 시대였고, 이 보다 조금 앞선 일본 역시 일본 최초의 여왕이었던 제33대 스이코천왕이 쇼토쿠 태자를 기용해서 불교국가의 기틀을 확립하고 있었다. 즉 7세기 동아시아는 여성이 군주인 여성 통치시대였던 것이다.
<용문석굴에 새겨진 측천무후와 황제의 꿈>
츤천무후 초기 낙양은 장안에 이어 중국에서 두번째로 번성한 도 시였다. 측천무후는 690년에 낙양을 신도로 칭하고 장안에서 낙양으로 천도한다. 측천무후가 낙양천도를 단행한 이유는, 새 왕조인 주를 개장한 뒤 장안에서 당나라의 이씨 세력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측천무후가 물러나고 당나라가 복귀된 다음에는 장안을 서도라고 하고 낙양을 동도라고 해서 두수도, 즉 이도시대가 전개된다. 낙양에 있는 용문석굴은 북위의 효문제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개착된 석굴이다. 용문석굴은 북위부터 당나라까지 이어지며 조성된 거대한 석굴군이었던 것이다. 용문석굴에는 현재 2300개의 석굴과 14만 2천여구의 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당연 압권은 봉선사 노사나동이다. 봉선사란 이른은 선왕을 받듣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건립한 사찰이라는 의미이며, 노사나동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곳의 본존이 13미터의 노사나불 좌상이기 때문이다. 노사나불은 418년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60권 화엄경의 주존불로 이후 실차난다가 695년부터 699년 사이에 번역한 80권 화연경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과 같은 부처님이다. 80권 화엄경은 측천무후 재위 기간 중에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60권 화왐경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이 아닌 노사나불의 좌상이 조성된 것이다.
봉선사 노사나불은 672년부터 675년까지 개착되는데 하락상도용문지양대노사나상감기에 따르면 후원자는 당시 고종의 황후였던 측천무후이다. 이와 관련해서 측천무후가 자신의 얼굴을 닮은 등신불을 모시고 황제가 되기를 발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측천무후는 황제가 되기를 발원하면서 불상을 조성하였고, 그로부터 15년 뒤에 중국 최초이자 최후의 여성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측천무후 시기 당나라와 불교는 매우 발전하는데, 이를 당 태종의 정관의 치와 당 현종의 개원의 치를 연결하는 가교로서의 무주의 치라고 한다.
<인도불교의 퇴조와 중국화된 불교의 약진>
당 태종과 측천무후로 연결되는 정치적인 안정은 당의 경제와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이로 인해서 중국불교 역시 인도 불교적인 모습보다는 중국불교적인 모습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당나라초기 현장에 의해 인도에서 전래된 유식학, 자은종(법상종)이 중국불교를 장악한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흔히 대표적인 중국불교 종파로 사가대승을 꼽는다. 사가대승이란 천태종, 화엄종, 선종, 정토종을 가르킨다. 이 중 천태종은 수나라 때 만들어지지만, 당의 안정기에 들어와 형계 담연에 의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또 화엄종은 측천무후 시기에 완성되며, 가장 중국적인 불교로 평가되는 선종 역시 이 시기에 확립된다. 정토종이 하나의 뚜렷한 종파라고 하기에는 미진하다는 점에서, 당의 안정과 번영은 중국문화적인 자신감을 회복시켜서 중국 불교의 판도를 인도에서 중국적인 불교로 바꾸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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