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요약/Q&A

사마타에서 위빠사나 전환

선묘(善妙) 2025. 6. 6. 20:59

중요중요

 < 수행자의 마음 상태 > 

1 안정을 넘어 관찰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관찰하려는 마음 생김
2 집중에서 흐름으로 호흡 전체에서 찰나의 변화로 주의가 옮겨감
3 감각의 생멸 지각 들숨·날숨의 시작과 끝을 미세하게 느낌
4 반응하지 않기 판단·분석하지 않고 관찰 자체에 머무름
5 통찰지의 연속 모든 대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흐름으로 보임
 

<수행의 흐름: 청정도론 18장~21장>

 계기관(記事觀) : 공간과 경계 사이의 건설과 귀속을 관찰함 - 경험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차림

 생명관(生命觀) : 생각과 정신의 이치 - 생각, 의식,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봄

 물질관(物質觀) : 몸을 걸쳐 내가 몸을 검토함 - 몸을 통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낌

 마음관(心觀) : 가장 잘 보는 것: 가치없음, 무상 - 마음은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흐름임을 봄

 경향관(傾向觀) : 몸 가장구의 범위 여부 관찰 - 마음이 끌리는 방향과 습관적인 흐름을 자각함

 경계관(境界觀) : 그것이 거기에서 일어날 뿐 - 경험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 따라 잠깐 일어날 뿐임을 인식함

 <사마타의 고요함과 위빠사나의 고요함>

고요함은 움직임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 자세를 말한다.

생각, 감정, 의도, 현상 등을 따라가지 않고 물위에 떠 있는 나뭇잎 처럼, 버스가 지나가면 창에 여러 모습이 보이는 것 처럼

지나가도록 두고 알아차리는 상태를 말한다. 

즉, 흔들림 없는 알아차림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위빠사나로 전환되는 사띠의 핵심이 된다. 

 

내가 “이 방향으로 가겠다”는 식의 결심이나 어떤 생각을 붙잡지 않고 그냥 알아차리는 것.

오히려 ‘멈춤 없이 흐르는’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정리>

고요한 상태가 너무 깊어져서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면 그거 또한 자아의식, 존재감, 번뇌의 씨앗이 된다. 

그래서 고요함 조차 무상하다는 걸 통찰해야 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사마타는 통찰의 길을 여는 문이다. 하지만 해탈의 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청정도론 18장에는  "하지만 위빠사나만으로도 정견이 자라고 해탈이 이를 수 있다. 순간 삼매에는 들어가야 가능하다. "

찰나적인 집중이 있다면 위빠사나는 성립 가능하다. 그 이유는 위빠사나는 무상고무아를 관찰하는 것이고, 지속적인 알아차림이 고요한 삼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 순간 생멸을 관찰하면 그것은 사마타 없이 통찰이 가능하다. 그것을 흐름을 그냥 바라볼 때 발생하는 것이다.(M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