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묘(善妙) 2025. 5. 21. 14:41

사람이 잘못되는 것은 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집착을 통해서이다.
마음이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마음의 침착으로 부터 벗어난다 
-파드마 삼바바 '가린 것 없이 봄으로써 얻는 자연스러운 자유'

207쪽

3장 치료

처음에 자기를 굳건히 한 후 자기를 놓아버리기, 처음에는 자아이고 그 다음이 무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도 순진했고, 다만 잘못된 이분법의 결과라는 것이 밝혀졌다. 

 

209쪽

명상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직접 부딪쳐 나가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프로이트가 제시한 훈습을 실제로 실천할 수 있다. 

 

8. 기억하기

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 : 최면, 자유연상법, 현재에 집중하기 

나. 현재를 기억하는 것 

215쪽

마음챙김은 동요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것의 역할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킴으로 나타나거나 대상을 직면하는 상태로 나타난다. 그것의 직접적 원인은 강한 지각이나 몸 등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그러나 그것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등과도 같고, 눈의 문 등을 지키기 때문에 문지기이기도 하다 

 

다. 외상

216쪽

명상수행은 프로이트의 최면 기법을 상기시킬 때가 종종있다. 즉 명상은 억압되어 있는 기억을 직접적으로 방출시키는 떄가 있다는 뜻이다. ---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초보 명상 수행의 주가 되는 호흡이나 신체 감각에 집중할 때 종종 그러한 기억이 터져 나온다. --- 이 기억들은 대게 격렬한 혼란을 가져다주고 통합을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는 알지만 내가 내 자신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요." 옷장속에서 숨을 참는 법을 알아가면서 두려움과 분노 절망을 배안에 봉인하는 법을 배웠다. 

 

라. 소외

220쪽

어린 시절 너무 일찍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는 책임감 있는 아이로 길러졌다. 해결되지 않는 나의 화는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데 따라오는 좌절로 인한 공격성이었다. --- 내가 찾고자 한 사랑은 내 어린 시설의 상실감을 건드려 나를 슬픔에 빠뜨린 것이다. 

 

마. 근본적인 결합

222쪽

부모 일방이나 쌍방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아이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철들 것을 강요받는 경우에 그 사람의 괴로운 공허함이 단순히 어릴적의 경험으로 남기기 보다는 자기 자신 속에 자리 잡는다. 이를 근본적인 결함이라고 부르는데 명상도중에 신체적 형태를 통해 종종 기억된다. --- 명상중 드러나는 것이 공호함이고, 가장 비슷한 설명은 아귀계이다. 

 

바. 어머니

225쪽

티벳불교는 지도받는 명상과 시각화를 통해 자비와 마음의 고요함을 배양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어머니가 고통과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 수행의 정신적 근원은 티벳인들이 그들의 어머니를 위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이다. 서양인에게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처럼 말해야 합니다. 

 

사. 동양은 동양이다

226쪽

동양의 자기는 가족, 계층, 계급, 사회조직의 기대가 형성하는 그물에 엮여 있기 때문에, 이로부터의 탈출구는 대게 정신적인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생활을 찾을 수 없는 개인적 자기를 위한 문화적으로 허용된 안전판 같은 것이다. 서양의 출발점은 소외된 자기이다. 개별성과 자율의 강조, 대가족과 심지어는 핵가족의 해체, 부모 역할의 결핍, 사회내의 애정보다는 성취를 위한 끝없는 욕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단절, 고립, 소외, 공허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위협적인 친밀감을 갈망하도록 만든다. --- 서양의 정신세계는 아귀계로 특징지워지는 정서들인 소외, 갈망, 공허감, 무가치함과 같은 감정들에 점점 더 취약해지는 것 같다. 

 

아. 명상과 서구적 자기

갈망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는데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져다 준다. --- 서양인들은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으로 부터 등을 돌린다는 데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 사람은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다고 느낄 때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되고 이때 갈망을 가지게 된다. 

 

9. 반복

234쪽

환자는 기억이 아니라 행동으로 반복한다. 그는 반복하되 자신이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흥미로운 현상은 반복ㅇ느 우리가 스스로에 관해 알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 치료자는 환자가 무엇을 반복하는지 자가하는것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자신의 반복을 철저히 아는데 있다. 

 

가. 지금 여기

나. 침묵

240쪽

내가 말하는 침묵은 가능성과 질감으로 가득찬 침묵이다. 

 

다. 간섭하지 않음

라. 기억과 욕망

마. 치료에 순수한 주의집중을 적용하기

253쪽

치료를 통해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잇었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무가치함은 어머니와의 불완전한 관계 때문에 자연히 발생하는 결과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여기서 이루어진 치료는 어떤 면에서는 티벳수행과는 정반대이다. 어머니를 더이상 어머니로 보지 말아야 했다. --- 힘든 상황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과거에 금지되었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안전한 환경을 내가 만든 것이었다. 

 

바. 보상

255쪽

보상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할 뿐,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는 하지 않는다. 

 

사. 틈

아. 망령을 조상으로

 

10. 훈습

262쪽

고통을 깨달음으로 지환할지는 고통을 겪는 자의 관점에 달려 있다. 무언가를 훈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 한다. --- 프로이트에게 훈습은 소외되었던 것을 되찾고, 부정하던 것을 수용하는 과정이였다. 

 

가. 그것

268쪽

자신이 정서와 연결되어 있음을 언어로 인정하는 행동을 직면의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 지옥 중생들의 거울과 같다. -- 무아를 깨닫

기 전에는 자아가 충분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 사상의 근본적인 교리이다. -- 집중은 화와 같은 소외되고 실체화된 감정들을 다루는 치료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서를 신체적으로 경험할 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훈련되면 그것은 점차적으로 정적이고 위협적인 실체로서 경험되지 않고, 대신에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결정지어진 과정이 된다. --- 불안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불안하지만 동시에 친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더욱 다양한 종류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 시작했다. 

 

나. 부당하게 상처받음

269쪽

훈습의 단계는 1) 위협적인 정서들과 함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2) 공간적 개념이 지배적이게 되었을 때 부인된 행동과 정서 뒤에 숨겨진 나라는 느낌을 찾는 것이다(불안을 수용하고 화를 수용하게 됨) 그렇게 되면 갈등하는 정서는 불안정한 체계에서 덜 위협적이게 되고, 관심을 요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의 반영이 되게 된다. --- 과거의 장애물이 전혀 극복되지 않았고 극복될 수 없음을 실감할때 심각한 분노의 감정이 종종 일어난다. 이 분노가 바로 소위 나르시시즘의 특징인 것이다. 즉 자신의 공허감은 어떤 식으로든 없어져야 한다는 헛된 기대와 이기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다.

 

271쪽

자기를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우리가 부당하게 상처를 받았을 때이다. --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라고 생각할 때인 것이다. --- 다시 말해 명상적인 알아차림의 조화속에서 분노를 수용하는 것은 통찰의 길로 가는 관문이 된다.  

다. --- 반응적인 정서가 무상하다는 불교적 견해는 이러한 현상(분노속에 몰두하는 것이 점차 줄어들고 나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관심으로 대체된다)을 근거로 두고 있다. --- 나의 실체적인 것을 알게 되면서 정서들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다. 내용을 비움

273쪽

정서적 경험과 함께 일어나는 기저에 있는 동일시의 느낌을 신중하게 성찰하는 것이 시작이다. 동일시을 하게 되면 반응적 정서들을 유지가 중단된다. 그러면서 정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된다. 

 

라. 공격성의 방향 바꾸기

278쪽

공격성은 자신의 증오나 욕구 때문에 관계를 상실하게 되지 않을 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감춰진 것이다. 

 

마. 종결

280쪽

종결은 자신이 부당하게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것에 서 나를 검토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마지막 기회이다. 내게 화가 났다는 것만 아니라 빠진 한주도 나를 그리워했다는 것이고,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종결을 서두르는 것 처럼 보였다는것을 지적하게 되었다. 

 

바. 향하여 나아감

282쪽

분노는 슬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인생을 흥미롭게 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힘든 감정을 훈흡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커다란 만족을 향해서 나아감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사. 승화의 수단

284쪽

축생의 욕망에 대한 해독제는 책이고, 아귀계의 끝없는 갈망에 대한 해독제는 정신적인 자양분으로 묘사된다. 승화에 대한 설득력있는 상징이다. 

 

에히리프롬 선불교과 정신분석(저서)에서 "소외감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치유는 고통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웰빙의 현존에 있는 것이다. -- 웰빙은 치유가 아니다. 붓다는 목적의식이다. 자기동일성의 이해를 포함하여 알아차림의 방향이 적극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우리가 괴롭다고 느끼고 타고난 공격성과 자기보호 감정들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더 깊은 이해를 향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