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2010). 후박꽃향기
53쪽
사실 승려가 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보편적 삶의 길을 거부하고 출가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세속의 삶에서 겪을 것 다 겪고 어느 정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이 무르익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경우는 함꼐 수행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평화를 선물한다. 그러나 대개는 엄청난 자기 문제를 안고 들어와서 그 문제에 직면하는 것부터 배우며 닦아가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는 인연한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고통을 전가하고 스스로도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된다.
69쪽
여학교 시절에 담임선생님께서 하루는 흰 도화지를 나누어주면서 새가 날아간 뒤의 흔적을 그려오라고 하였다. 스님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무 것도 그리지 않고 백지를 그대로 드렸다고 한다. 이유를 묻는 선생님에게 스님은 허공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길 수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 시렂부터 이미 그 기지와 예지가 범상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71쪽
우주 만유의 근본이 생멸의 발현이다. 생명을 진리로 보는 거예요. 생명을 가진 자는 모두 평등하다 이거예요. 그러니깐 모든것이 생각하면 생각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생명의 실상의 근본사상이지요. 뭐든지 생각을 하면 생각의 힘으로, 염력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 간곡히 생각하면 불구자도 고칠 수 있다는 사상이지요.
85쪽
혈연에 집착하고 연연해하는 것도 수행에 자애가 되지만 부모형제와 인위적으로 교류를 끊고 마음의 끈을 잘라내는 극단적 방법은 수행에 더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정 기간 가족을 떠나서 물리적, 정신적 공간에 거리를 두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수행자의 최대과제인 자비심의 함양은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 원친임을 알아야 한다.
111쪽
도교적인 삶, 여유롭고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는 삶을 동경했던 나는 좀 게으으로 안일한 일상을 꿈꾸었었다. 가능하면 휴식을 종하하고 빈둥거리기를 좋아했다. 정말로 조금 일하고 많이 쉬면서 즐기는 삶을 추구했다. 그런데 스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특히 수행자는 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웠다. 그 이유는 2가지이다.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의 가만히 관찰해보면, 열심히 살고 있는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순간일 때, 여기 지금에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높여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여기 지금 머무르는 순간만이 자기를 진실로 자각할 수 있고, 그 순간만큼은 주변에 끄달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소위 주인공으로 머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가 더 깊어지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아도, 그 자이에 의해서 최선이 다해지는 일도 잊어 버리는 그야 말로 우리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주객일여, 주객초월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137쪽
힘들면 아침에 일어나시면 향 하나를 피우고 기도를 하셔요, 지혜를 달라고 문수보살 기도를 하기소,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셨어요. 우리 스님의 삶은 기도하는 삶이에요. 하루하루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하면서 어려운 일을 이겨내고, 보통사람은 참기 힘든 일에도 우리 스님은 굉장히 평정심을 유지하세요. 일단 평정심을 유지하고 기도를 지극하게 하시면서 풀어나가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 반드시 해결이 돼요. 직접적으로 어떻게 하시는 것도 아닌데, 늘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더라구요.
140쪽
용서를 해 주자, 관용을 베풀자, 공사를 해서 내쫓자 해도 내쫓지 말자, 그 사람을 가르쳐서 옳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 교육의 신조예요. 법정스님 말씀에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자신이 용서를 받는다는 말이 있어요.
146쪽
흔히 역마살이 있고 방랑벽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생활적인 일들에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덤벙덤벙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시작해도 마무리하는 지구력이 부족한 용두사미형이 많다. 또 성불을 하겠다든지, 부처가 되겠다는 엄청난 꿈을 품을수록 마음이 급한 나머지 작은 것은 시시하고 하찮게 여겨져서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일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잇었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큰 뜻을 이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158쪽
지혜와 지식에 대한 오해이다. 즉 지식을 지혜와 상충되는것으로 받아들여서 지식은 알음알이며 부정적이고, 지혜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앎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을 연마하는 곳은 대학이고, 지혜를 닦는 곳이 선방이라고 생각하고 불굔느 오랫동안 대학교육의 가치를 부정해 왔다.
159쪽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듯이 지식과 지혜 또한 둘이 아니다. 자아에 집착하면 중생이 되고, 집착하지 않으면 부처가 되듯이 앎에 집착하면 지식이 되고 집착하지 않으면 지혜가 된다. 지식에 매달리면 알음알이가 되고, 지식을 활용하면 그것이 바로 지혜과 된다. 그런데 활둉할 지식조차 없는 것을 무지라고 부른다.
161쪽
중생의 병은 번뇌에서 생기고, 보살의 병은 대비에서 생긴다. 보살은 지혜를 가진 고로 생사에 안주하지 않으며 자비심을 가진 고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는다. -유마경-
163쪽
아무리 당신의 생각이 옯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제자들을 설득시켜서 함께 나아가고자 하셨다. 그러나 더러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이 당신도 힘드셨을 것이다. --- 만약 얼굴에 뭐가 묻었다고 하면 고맙다고 치하를 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마음이 구부려져 생각이 틀렸으니 고치라고 하면 대게 화를 내면서 쓸데 없는 간섭을 한다고 싸우려고 할 것이다.
164쪽
응영여약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병에 따라 약을 쓰는 처방을 달리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셔서 8만4천 법문을 설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시려고 이 세상에 출현하셨느니라
172쪽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고 분열되는 현상은 정신적 불건강한 것이고, 심리적 사회적 대인관계에 반드시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정신분열증의 정도는 바로 신구의 삼업이 얼마나 일치하느냐, 또는 얼마나 삼업의 일치와 불일치를 자각하고 알아차리느냐의 정도와 비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신구의 삼업은 수행의 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수행의 열매로 들어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삼업은 깨달음의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깨달음의 결과로 들어난다는 뜻이다.
179쪽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9세기 경 중국의 무착선사가 일찍이 출가해서 계율을 익히고 경학에 열중하던 중 성공이라는 한 선사를 만나 여러 지방과 사찰을 두루 참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오대산으로 들어 갔다. 도중에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을 따라서 사찰안에 들어가 차를 대접받으면서 법문답을 했으나 무착 선사는 노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날이 저물어서 하룻밤 묵어가려고 무착선사가 청했으나 노인은 선사에게 아직 집착이 남아 있기 때문에 머물 수 없노라고 거절했다. 굴 밖으로 나온 무착 선사가 전송하는 노인의 시자인 균제 동자를 통해 그 곳이 금강굴 반야사이고 그 노인이 문수보살의 화신음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무착 선사가 균제 동자에게 가르침을 구했고, 그때 균제 동자가 들려준 게송이 바로 이 게송이다.
면상무진공양구 / 구리무진토묘향 / 심리무진시진보 / 무구무염시진여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181쪽
화엄경은 화내는 마음을 한 번만 일으켜도 백만가지 장애가 일어난다고 가르치고 있다. 보현행원품에 보면 불자여 나는 어떤 법의 허물도 보살이 다른 보살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다른 보살에게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100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니라 라는 가르침이 있다.
185쪽
심리치유적 관점에서 보면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용서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인욕하면 그것은 인욕이 아니라 억압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어 심각한 병을 유발한다. 다시 말하면 용서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진정한 용서는 집착이 없는 사랑일 때 가능한 것이다. 집착이 없으려면 무상을 깨달아야 하고, 무아를 실천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용서하는 일이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다.
186쪽
거울을 보면 자기얼굴을 비추면 자기 얼굴이 보이지요. 그러다가 거울을 치우면 얼굴이 없어지지요. 나에게 닥친 모든 좋고 나쁜 경계가 거울을 치우면 자연히 없어지듯이 거기에 매이면 안되는 거예요. 나쁜 것 좋은 것에도 매이지 말라. 그렇게 살면 속상할 것도 업서요. 지나가면 그만이잖아요.
187쪽
잡아함경에 열반에 대한 말씀이 있다. 탐욕도 영원히 그치고, 성내는 것도 영원히 그치고, 어리석음도 영원히 그치고, 가지가지의 번뇌가 영원히 그치는 것이 열반이니라. 부처님 가운데는 성불하신 부처님, 지금 되어가는 부처님, 이룩하지 않은 부처님 3종류가 있다.
189쪽
용서는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용서는 아니다.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필요하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고, 분노이지만 행위를 용서하는 것은 그 행위가 인과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행위는 누가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 대상이 아니다. 행은 업이다.
194쪽
단점은 당신 인생과 당신 생활에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의 단점은 보지 않고 장점만 쓰는 거예요. 그러니깐 누구나 장점이 있으니깐 아무도 버릴 사람이 없게 된다.
195쪽
바로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서원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각기 나름대로 자기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종단의 발전을 위해서 또 우리 사회와 나라 세계를 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일꾼들도 키우시려는 원력 때문이다. 그래서 ---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앞세우지 않으시고 언제나 공적인 마음으로 그들은 대하셨던 것이다.
198쪽
길거리에 버려진 돌멩이도 제 곳을 찾으면 멋진 돌담을 만드는 데 쓰여지듯이 말이다. --- 스님의 눈에 제자들은 모두가 귀하고 쓰임이 많은 인재요, 훌륭한 재목이었다.
207쪽
도인과 도인이 아닌 자, 성인과 성인이 아닌 자의 차이는 간단하다. 전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설사 세상 사람들이 떠들썩할 정도로 뭔가를 성취하고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의 성공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행자 자신이 깨달음과 도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길은 다양하다.
209쪽
어쩌면 보시는 보시자 입장에서 스스로의 탐욕과 집착을 정화하는데 초점을 둔 수행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십바라빌의 7번째 방편바라밀은 그것이 법보시든 재보시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가장 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시하는 진정한 보시바라밀이 아닌가 싶다. ---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수행했느냐, 얼마나 깨달았느냐 하는 것보다 각자 자기가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우리 사회와 이웃을 위해서 어떻게 유익하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213쪽
육신은 초라하고 작은 초막에 산다고 할지라도 마음만큼 궁궐에서 사는 것처럼 당당하고 부자로 살라고 말씀하셨다.
242쪽
유교에 치기언과기행, 행동보다 지나치게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말이 행동보다 지나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말로는 육바라밀을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 스스로는 보시를 잘 안해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받는데만 익숙할 뿐, 주는 일에는 인색했던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었다. --- 나는 스님이 나에게 10만원을 주든 100만원을 주든 내 입장에서는 무조건 감사할 뿐, 다른 누구에게 얼마를 주셨던 그 가치가 변화하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스님의 것을 스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개인이 반응하는 것은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 다시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253쪽
서양심리학의 용어를 차용해서 서양인들에게 불교교리를 가장 성공적으로 가르쳤던 사람이 티벳의 초감트룽파 린포체이다. --- 그는 서양심리학의 용어로 불교교리와 명상수행을 설명하고 수많은 불교 인재를 양성했고, 지금도 제자들인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심리치료에 명상기법을 접목하는 사람 가운데 초감트룽파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평소에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해서 혼외정사와 알콜중독으로 엄청난 무리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