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묘(善妙) 2025. 5. 21. 12:13

2장 명상

= 다야나(자나, 선)와 바와나(명상) 구분하기, 명상=수행=바와나 민감한 부분 = 

1. 다야나(자나, 선, 명상): 마음의 몰입, 또는 무아의 상태 고요함과 행복을 가져오지만, 마음의 더러움은 뿌리 뽑지 못한다. 

    생각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명료하게 깨어 있는 것, 고요한 마음으로 대상에 집중하는 일,

    대상을 깊이 사유하고 관하는 것

    궁극적 목적: 번뇌를 없애고 열반을 실현하는 것(놓아버리기)

2. 바와나( Bhāvanā ): 마음의 계발, 명상. 바와나는 두가지로 구분된다. 

   사마타 바와나: 고요함의 계발, 마음의 집중과 일치, 마음의 몰입 상태로 이끈다. 

   위빠사나 바와나: 통찰의 계발, 지혜와 일치, 해탈로 이끈다.

   되게함, 수행하다, 수습하다, 기르다, 경작하다

   농부가 곡식을 가꾸듯, 수행자는 마음의 땅을 개간하여 유익하고 선한 마음을 성장시켜 열반이라는 결실을 얻는 것

 

1. 바와나

   일반적으로 명상으로 번역되고 종종 "집중"과 동일시되지만, 명상은 바와나(bhāvanā), 즉 발달을 위한 더 넓은 범위의 운동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댜나(Dhyāna)는 또한 "주의, 생각, 성찰"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 의미: 바와나는 '마음의 훈련', '마음의 발전', 또는 '명상적 수행'을 의미. 일반적으로 바와나는 마음을 훈련하고, 마음의 상태를 개선하며, 마음을 관찰하고 개발하는 모든 종류의 수행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 목적: 바와나는 명상이나 정신 훈련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걷기 위한 수행입니다. 또한, 바와나는 특정 마음의 상태나 특성(예: 자비, 마음의 평화, 집중력 등)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 : '메타 바와나'(자애명상), '사마타 바와나'(집중 명상), '비파사나 바와나'(통찰 명상) 등이 있습니다.
  • 바와나는 마음을 훈련하고 발전시키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명상뿐만 아니라 자비나 도덕적 훈련 등도 포함합니다.

2. 디야나( Dhyāna), 자나

  • 의미: 디야나는 '집중 명상' 또는 '정신의 일관된 집중'을 의미합니다. 디야나는 매우 깊은 집중 상태로, 마음이 외부 자극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 목적: 디야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깊은 집중을 통해 내면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상태로 이끌어 갑니다. 디야나의 상태에 도달하면, 마음은 차분하고 명료하며, 종종 '정신적 고요'와 '완전한 집중'을 경험하게 됩니다.
  • 단계: 디야나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단계(4지경, jhāna)로 나눠지며, 각 단계는 점점 더 깊은 집중 상태로 발전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며, 마음은 더욱 깊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 디야나는 '집중'이라는 의미의 명상으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깊은 평화와 고요를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 의미: 자나(디야나)는 깊은 집중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명상 중에서 마음이 완전하게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어 외부 자극이나 생각이 차단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 목적: 자나 또는 디야나의 목표는 마음의 고요와 집중을 통해 내적 평화를 얻고, 깨달음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나 상태에서는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도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 제1자나 (1st Jhana): 강한 집중과 기쁨, 즐거움이 경험되는 단계. 마음이 고요하고, 외부 자극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 제2자나 (2nd Jhana): 더욱 깊은 집중과 정신적 평화가 이루어지는 단계. 감각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마음의 집중만이 남습니다.
  • 제3자나 (3rd Jhana): 심리적인 평화가 더 깊어지고, 감정적인 안정이 더 확고해집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여전히 있지만, 더 큰 평화와 안정이 중심이 됩니다.
  • 제4자나 (4th Jhana): 완전한 고요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상태. 더 이상 기쁨이나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고, 매우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 상태가 됩니다.
  • 명상의 깊이: 자나(디야나)는 단순한 마음의 안정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통찰내적 지혜를 얻기 위한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고통의 원인해탈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즉, 바와나는 명상적 수행의 넓은 범위에서 마음의 발전을 의미하고, 디야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깊은 집중을 통한 정신적 고요를 얻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4쪽

마음은 긍지를 갖지 않습니다. 창피함도 갖지 않습니다. ---- 경험이 풍부한 명상가를 만나면서 감동받은 점이라면 탐구와 관용, 유머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찾을 수 있는 능력도 아니고, 정신분석을 통해서만 배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6. 순수한 주의집중

146쪽

명상은 훈련받지 못한 일상적 마음을 자연스러운 출발점으로 보고, 어떤 특정한 주의집중의 태도를 계발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주의집중이다. 순수한 주의집중이란 "연속되는 지각의 순간들에서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명료하게 집중하여 알아차리는 것"으로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정서, 신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여태껏 성찰의 대상이 아니었던 마음을 개발한다. 이러한 주의집중은 그 자체로 치유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 불교심리학의 기본적 교의이다. 이 주의 집중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면 붓다의 모든 통찰들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지금 이순간, 있는 그대로의 감각적 경험과 네 반응을 구분하라. 그리고 매 순간마다 네가 겪는 경험에 세세한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이 바로 순수한 주의집중이 의미하는 바이다. 

 

가. 반응을 줄이는 것

147쪽

주의집중 전략이다. 수행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고, 바귀는 것은 다만 인식의 대상일 뿐이다. 호흡에서 시작해서 신체, 느낌, 감정, 생각, 의식 그리고 마침내는 나라는 느낌에 이르는 동안 명상은 점차 포착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순수한 주의집중을 하라고 요구한다. ---- 주객이 더이상 작동되지 않는 선택없는 알아차림의 경지가 한창일때 순수한 주의집중은 자기의식을 없애주고, 자발성을 허락하다. 여기서 자발성은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진짜 자기관념과 혼동을 일으킨 바가 있다. 

* 자발성?

 

149쪽

순수한 주의집중의 역설이란 받아들이는 것이 동시에 버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 그러한 정서와 함꼐 하는 것만이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 그 감정들과 함께 하면서도 계속 반응하지 않음으로 변화를 이루어 낸다. --- 부정과 억압 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장과 유연함 속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한마리가
뛰어든다.
풍덩!
-조셉 골드스타인

 

연못은 마음과 정서를 의미한다.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는 마음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생각 혹은 감정이 되는것이다. 풍덩은 그 생각과 감정의 반향을 나타내는데 반응의 힘에 의해 복잡해 있지 않다. 이 시는 절제적인 언어로 순수한 주의집중의 상태를 환기한다.

 

나. 정신분석의 기술

151쪽

포로이트가 일궈낸 주요 성과로, 그의 전 저작에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가 비판적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지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정신분석의 수행을 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불교의 명상가들이 수천년에 걸쳐 호소해온 주의집중의 자세라는 것을 모른채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순수한 주의집중의 첫번째 본질적 특성 : 편견이 없고 치우지지 않음

*프로이트 노트: 모든 의식적인 영향을 거둬야 한다. 그리고 완전히 무의식에 맡겨야 한다 의사는 그냥 듣기만 하지 어떤것을 가지고 있든 그것 때문에 힘들면 안된다. 

이론 종류의 주의를 자신에게 기울이는 것, 자신의 반응으로 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기초한 자기동일성으로 부터 편견없고, 비판단적인 알아차림의 자기동일성으로 옮기는 것.  --- 무엇이 주어지든 다 받아 들이는 것이다.

 

다.  개방성

두번째 특성: 다 받아 들이는 능력

153쪽

★순수한 주의집중은 개방성을 가져온다. 개방성은 주어지는 것을 다 받아 들일 수 있는 능력으로 부터 나온다. 개방성은 위니코트가 말한 혼자있을 수 있는 능력에서 말한것 처럼 아이들이 어머니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놀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방해가 없는 이러한 형태의 개방성은 명상이 이끌고자 하는 특질이다.

 

154쪽

* 소리 에피소드: 날카로운 소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걸어 잠그도록 한다는 것이다. --- 자주 불안하고 우울했으며 동시에 실재감을 못느기는 것이 불만이였다. 이것을 스스로 신경과민이라고 했는데, 일처리는 능숙했지만 무얼 하든 흥분되거나 자신감이 없었다. --- 불안함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고, 어머니가 가진 불안감을 떠올렸고, 어머니도 자신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알았다 

 

155쪽

불안에 순수한 주의집중을 하는 법을 배운다. 첫번쨰 반은은 불안이 두려워서 불안을 묶어 두려고 했다. 그 반응에서 한발 물러서게 되쟈 두려움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대신 그것과 함께 있는 법을 알았다. 이러한 실제적 감정과 함께 하자 폴은 실재하는 사람으로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156쪽

반응적으로 대처하기를 강요받는 아이들은 그 자신의 내적 과정과의 접촉을 잃어버리게 된다. 부모의 요구에 압박받게 되고, 덜 급박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능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거짓 자아가 마련되고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모르는 나르시스적 성격이 되는 것이다. 반응적인 자기와 핵심적인 경험을 분리함으로써 무조건적인 개방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 "반응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만 자기가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위니코트는 말했다. 

 

라. 놀라움

156쪽

순수한 주의집중은 치우침이 없고 비판단적이고 열린것이다. 또한 어린아이처럼 마음 속 깊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 "집착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자세를 요구한다.  --- 싫은 것은 거부해야만 한다는 가정에 의문을 품게 된다. 대신 우리는 고통조차도 관심을 기울일만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 우리자신의 마음

세번쨰 특성: 두려움이 없다

158쪽

우리는 3가지로 부터 두려움을 느낀다. 타인, 자신의 마음, 죽음이다. 

 

159쪽

우리는 자신이 알고 싶지 않는 자신에 관한 무언가를 발견할까봐 두려워 한다. 

 

160쪽

메디에피소드: 마주하고 싶지 않는 감정을 주의집중하게 되면 자신이 만든 감정으로 전환이 된다. 처음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당황스럽지만 만족스럽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울고 싶었다는 것이 두려워했던 점일 수 있다. 운다는 것은 약해 빠진것이고, 수용하기 어렵고, 부적절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접근할 때도 억제 되었다. 화내고 조바심을 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벗어나려는 시도는 모두 공포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이 저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61쪽

불안정이 발현될 때 순수한 주의집중을 통해 불안정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나 두려움 없는 상태는 불안정에서 대해 같는 강한 인내와 관용이 결합되어 있다. --- 불교적 관점에서는 진짜 자기는 없고 분석되어야 할 것은 저항 자체일 뿐이다. 진짜 자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정을 드러내는 것만이 자유를 얻는 길이다. 공포는 공포로 받아 들이고 그것을 인내로 감쌀 때 비로소 우리 마음에서 안식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 순수한 주의집중이 요청하는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감정에 함께 하는 것을 배우면서 그녀는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진솔해졌으며 두려워하면서 갈망했던 친밀한 관계를 더 잘하게 되었다. 

 

바. 이행공간

네번쨰 특성 : 비인격성

162쪽

이행공간은 유아적 의존성과 홀로있기를 감당하게 되는 능력 사이에 위치하는 디딤돌이다. 경험의 중간영역으로 불린다. --- 이행적 대상(인형, 담요, 장난감)은 유아를 타인에 대한 이해의 장으로 이끌어 주는 뗏목이다. --- 이행적 대상이 많은 특성(사랑과 증오도 이겨내는 능력, 모든 변화에 대한 저항, 피난처와 따뜻함을 제공하는 능력, 이행적 대상을 점차적으로 포기함)은 모두 순수한 주의집중과 일치한다. --- 순수한 주의집중은 티벳 전통에서 말하는 스파이 의식으로서 마음으미 한구석에서 관찰한다. 

 

163쪽

순수한 주의집중의 관찰자는 나도 아니고 내가 아닌것도 아니지만 두가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이행적 대상을 상기시킨다.--- 소리를 들었을 떄 듣는 사람과 소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내부와 외부가 한데 모이는 듣는 순간만이 준재한다. 이 듣는 순간은 숨이 박에서 나오는지 안에서 나오는지에 관해 말하는것이 불가능하듯,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164쪽

순수한 주의집중을 통해 명상가는 개울이 아니라 개울위의 돌다리가 된다 --- 무엇이 발생하든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집착도 당황도 하지 않음으로써 명상가는 경험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좁은 차원에서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항상 확장하는 차원으로 지속적으로 이동한다. 생각과 감정은 자만과 수치스러움에서 벗어나 점차로 부과된 것을 떨쳐 버리고 생각과 감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165쪽

유아는 부모가 타인이고 자신을 자기라고 인식하는 때를 맞이한다. 이행적 대상은 피할 수 없는 욕구과 감정을 잘 다루도록 도와준다면 명상의 이행적 공간은 겪기 어려운 정서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준다. --- 프로이트는 비자발적인 생각과 감정은 자발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드가 있는 곳에 자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붓다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되찾거나 그에 접촉하는 행위를 통해 그 경험이 가지는 비인격성을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린다고 한다. ---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생각과 정서는 소유될 수 있다. 하지만 내적으로 존재하는 소유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 알아차리는 힘

166쪽

동일시를 깨뜨리는 것은 치료적인 성격을 가진다. 

폭실 에피소드: 명상은 첫째, 혼란에 빠뜨린 기대, 당연한 분노, 실망, 불충분감, 화등을 인식하고 견딤으로 폭식하지 않게 되었다. 둘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 나는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감정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의 고유한 실재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것이 가지는 공의 속성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느꼈고, 갇힌 죄수가 아니라는 것을 꺠닫게 되었다. 

 

아. 지혜롭게 보는 것

168쪽

순수한 주의집중은 치우지치 않고 열려 있고 비판단적이고 관심을 기울이고, 참을성 있고 두려움이 없고, 비인격적이다.----  또한 위협을 도전으로 전환하면서 엄청난 정신치료적 효과를 거둔다. 

 

168쪽

잡초를 뽑음으로써 우리는 화초에 영양을 공급하는 셈이다.
영양 공급을 위해 잡초를 뽑아 그 옆에 둔다.
수행중의 어려움은 결국 당신을 도울 것이다.
그러니 마음 때문에 괴로워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잡초가 마음속에서 정신적 자양분이 되는 것을 체험한다면 진전을 이룰 것이다. 
- 스즈키 큰스님

 

169쪽

이것이 붓다가 위대하게 발견한 것이다. --- 명상은 뛰어난 정신치료에 들어 있지만 거의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정서적 자료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7. 명상의 정신역동

171쪽

불교명상은 자아의 특정한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느낌을 순간적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해체한다. 정신치료가 대게 개인사를 설명하는 이야기의 창조와 관련되는 한편, 명상은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은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이다. 

 

172쪽

명상을 통해 통합, 겸손, 안정감, 자각등 일반적으로 정신치료의 목적이 되는 대상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적이다. 그러나 불교 명상의 영역은 자기 이해의 머나먼 지평을 향한 것으로 인간의 관찰력을 증진시킨다. --- 사색의 힘을 통해 비로서 명상가는 자기를 경험하는 것의 토대가 되는 것, 자기라는 느낌을 발생시키는 기본적인 갈망을 살펴보고 잡을 수 있게 된다. --- 명상은 처음에는심리적인 것이 주가 된다. 그러나 집중, 마음챙김, 분석적 통찰의 실천이 계속됨에 따라 정신역동을 변화하고 스스로를 경험하는 방법을 검토하는데로 초점이 옮겨가면서 정서적 문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 개인사의 소소한 문제이기 보다는 존재가 처한 근원적인 곤경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가끔 특수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심리학의 영역으로 돌아와야 할 필요가 있다. 

 

가. 공포와 기쁨

깊은 명상으로 얻는 실제 심리적 경험을 잘 묘사한 것이 바로 청정도론이다. 4세기 경 스리랑카 섬에서 붓다고사가 만든 명상서이다. --- 명상가는 공포나 기쁨으로 다양하게 묘사할 수 있는 상태로 접어든다. 이 상태는 정신분석에서 볼 수 없는 경지이다. 이 경지는 특정한 자아 기능의 계발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이런 상태는 5개의 환희와 행복으로 나누어진다. 1) 작은 환희는 몸의 털에 전율을 일으킬수 있다. 2)순간적인 환희는 매 순간 보이는 번갯불과 같다 3) 환희의 물결은 해안의 파도처럼 계속 몸위에서 부서진다. 4)공중에 뜨게 하는 환희는 몸을 들여 올려 허공으로 솟아오르게 한다. 5) 완전한 환희는 몸전체를 부풀러 오른 부레처럼 완전히 채워준다. 반면에 공포는 불완전하고 나르시시즘적 욕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준다. 

 

176쪽

또 다른 관점에서 명상은 자아에 도달할 수 없게 만드는 집착과 직면하는 것이다. 집착은 나르시시즘적이다. 명상이 전개되면서 정서적 동요나 잡념의 형태를 띠는 부분이 조용해지면 더 미묘한 집착이나 자기동일시가 그를 대신해 똬리를 튼다. --- 자기에 대한 새로운 통로가 열리고 매 순간마다 집착과 해방의 새로운 가능성이 다시 열린다. 명상가는 자만심, 확실성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 나르시시즘적인 목적을 위해 명상적 과정을 취하는 능력을 마주하고, 이를 철저히 봉쇄해야 한다. ---명상가는 매 단계에서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동일시 되는 부분이 어딘지를 살핌으로 써 총동들을 드러내고 해소 해야 한다. 이런 덧 업는 경험을 함으로 써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변화가 오게 된다. 

 

나. 명상의 첫단계 : 자아의 분리

명상가들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단지 그런 갈등을 경험하는데 대한 현저한 비방어성이 있을 뿐이었다. 명상은 감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브라운과 엥글러). 하지만 명상은 인간을 더 수용적이고 덜 방어적인 존재로 만들어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 정신치료를 할 수는 없다. 

 

다. 고통에 머물기

명상가는 환상, 카타르시스, 깊은 사고를 하더라도 감정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상자체가 그 고통을 마술처럼 치료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은 고행이고 비생산적이다. --- 초기 명상은 자기 관찰의 능력을 개인적 책임을 회피하는데 이용한다. 자신의 고통을 관찰하긴 하지만, 자신이 그 고통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라. 공간적 은유 드러내기 - 공

초기 명상수행자들은 공간적 은유들이 주를 이룬다. 관찰적 자기를 통해 마음과 몸을 관찰한다. 마음은 광할한 공간이나 통과해야하는 동굴, 식물의 뿌리를 보야하 할 식물과도 같은 경험을 한다. 혹은 완전함이나 전체성에 대한 갈망, 동반된 공허함을 직면하게 된다. 이것을 실재성에 대한 믿음, 자기동일성이나 핵심 뿌리, 중심을 발견한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이러한 공간적 은유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다가 명상적 마음(데이먼 골먼이 말함)으로 집중된 강렬함으로 파괴한다. 사실, 불교 명상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성은 자기가 실체라는 개념을 완전하게 지워 버릴 것을 추구한다는이다.  

 

마. 바른 집중: 공간적 은유의 탐색

반복적인 주의를 알아차림의 중심 대상-단어, 소리, 감각, 시각적 심상 혹은 생각-으로 돌림으로써 고요함이 몸과 마음에 생겨난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기쁨의 경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통 불교심리학에서는 수행의 부작용으로 다뤄진다. 그러한 유혹적인 힘을 경고하면서도 왜 집중의 계발은 장려되고 추구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자기라는 느낌의 공간적 은유를 바꾸는 집중하는 수행의 힘 안에 놓여 있다. --- 집중 수행은 무상 무아를 가져다 준다. ---- 나의 스승이 승려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적 공상이 일어날 때마다 "외로움의 깊은 색"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외로움의 머뭄에 따라 외로움을 충분히 경험하기 두려워했던 갈망과 배고픔이 중심구멍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한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자 그 구멍이 확대되기도 하고 수축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 구멍은 수치심과 불안정에 제약을 받지 않는 실체의 은유가 되는 선명한 빛의 드넓은 공간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 처음에는 부정의 강박적 생각으로 시달리고, 그 후에 외로움의 깊은 샘과 강박적인 생각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 불교 수행 관점에서 집중계발은 자기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바. 바른 마음챙김: 시간적 은유의 탐구

순수한 주의집중과 같이 마음챙김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한다. 

 

1) 시간

187쪽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자기에 대한 공간적 경험에서 시간적 경험으로 변화가 이루어진다. --- 마음챙김은 생각, 느낌, 상상, 감각들이 어떻게 마음과 몸에서 끊임없이 변하는지 알아차리는 것과 관련된다. --- 또한 자기에 대한 경험의 또 다른 차원을 드러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항상 변화하는 세상의 패턴들이 어떻게 형성되는와 관련된다. -- 마음챙김이 꼐발되면 전과 같은 공간적 방식속에서 생각될 수 없다. 자신에 대한 공간적 감각으로부터 시간적인 것으로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급격한 유동성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생각하는것은 불가능해진다. 마음챙김 이전에는 마음은 몸과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책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도 있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분리할 수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2) 몸

189쪽

몸을 분리된 사물로, 마음을 생각하는 장소로 본다면, 우리는 소외감이나 동떨어진 느낌을 증폭시키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알아차림 수행은 호흠과 몸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부터 시작된다. 자기에 대한 시간적 차원의 인식은 자신의 신체적 경험들이 일어남에 따라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으로 부터 생겨난다. 이는 말 자신의 감각으로 가는 것이다. ---- 자기에 대한 견해(공간과 반대되는) 사이의 연관을 기술하기 시작했다. 즉 경험의 무상성을 수용하는 것이 역설적이게 우리에게 실재감을 준다. 

 

3) 호흡

191쪽

숨쉬는 것은 시간을 자기 경험으로 통합하는 독특한 기회가 된다. 자기를 경험할때 정신역동기반에서는 호흡이 아니라 배고픔이다. 알아차림이 식욕에서 호흡으로 이동할 때 불안은 약해진다. 호흡은 순응하게 된다. --- 불교명상에서 공간에서 시간으로, 식욕에서 호흡으로 진행되는 것은 마믕과 몸, 주체와 객체, 알아차림과 그 대상과의 분열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집중적인 마음챙김 수행을 가르쳤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관찰적 자아를 발달시키고, 전체 혹은 열린 공감을 경험하고, 경험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식하는 것으로 강조점이 이동한다. --- 마음챙김이 계발되면 우리 경험의 기저에 있는 냉혹함과 분주함은 더이상 피하지 않아도 된다. 즉, 힘들이지 않고 부담없이 마음챙김이 진행되고 알아차림은 있으나 자의식은 없이 계속해서 경험이 전개 된다. 이러한 흐름들은 식욕에 기반을 둔 만족과 좌절은 감소한다. 긴장된 자기는 이완되고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4) 순응

193쪽

결핍감에 집착하면서 공간적으로 자기를 지각하는 것에서 호흡에 기반을 두고 시간적으로 자기를 자각하는 것은 활력있는 자기 자각이다. --- 마음챙김수행은 자기의 시간적 본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인 경로를 제공한다. --- 마음챙김 수행을 잘하게 되면 자아의 순응 기능이 생기게 된다. ---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거짓 자기를 버릴 수 있다.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는 욕구를 포기하게 되고, 만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실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도록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다

 

196쪽

마음챙김 수행은 장애가 있는 주관성을 치유하는 것으로 항상 개인의 지각의 영향을 끼치는 집착과 혐오로 인한 왜곡없이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사. 통찰: 자기 은유의 탐구

티베트의 위대한 철학자 총 카파가 가르쳤듯이 삼매만으로는 자기의 문제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이런 취지에서 삼매왕경의 다음 구절을 인용했다.  "삼매를 얻은 세간 사람들도 자기라는 관념을 없애지 못한다. 그들 역시 심신의 괴로움이 찾아오면 심한 동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이 사물은 본디 자기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그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명상에 임한다면 마침내 열반에 이를 것이다." 즉, 자기 통찰의 과정에서 관찰될 때 기쁨은 공포의 경험을 변화한다. 집중과 마음챙김의 힘이 나를 실제로 경험하는 데로 향하게 될떄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안정적이였던 것이 불안정해진다. -- 자기라는 느낌이 한낱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이것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했던 것에 대한 재인식이라는  불교의 초기 가르침과 유사하다. --- 다만 항상 진실이었지만 인정되지 않았던 바를 드러낸다. 바로 자기는 허구라는 것을 말이다. --- 화, 공포, 이기적 욕망과 같이 다루기 힘든 감정들은 자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발생한다. -- 자기의 은유적인 성질을 드러내어 윤회의 중심축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갈망을 없애는 데서 통찰 수행은 명상가가 나라는 거짓 느낌을 보호하려는 욕구로 방해받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